전통

멕시코 사람들의 새해, 춘분

미키라티나 2006. 3. 27. 16:15

        어느 날 대지의 여신이 떼뻬약 언덕 위 신전을 쓸고 있었다. 바닥에 초록색 아름다운 깃털이 떨어진 것이 눈에 띄자 이를 주워 허리춤에 간직했다. 이후 대지의 여신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이미 400명의 아들들과 한명의 딸이 있었다.


         딸은 오빠들에게 달려가 엄마의 임신 사실을 알렸다. 이에 오빠들은 어머니 배속의 아이를 죽이기로 하고 여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여신이 두려움에 떨자 그녀의 배속에서 “두려워하지 말라”라며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갑자기 완전히 성장한 전사의 모습을 한 전쟁의 신 위칠로뽀츠뜰리가 태어났다.


          그는 먼저 동태를 살피러온 누이를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뜨렸다. 그녀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어서 위칠로뽀츠뜰리는 400명의 아들들을 모두 물리쳤다. 위칠로뽀츠뜰리는 태양이 되고 누이는 달, 400명의 아들들은 별이 되었다.


          따라서 태양신은 매일 밤 서쪽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 적인 별들과 전쟁을 치루고 아침에 동쪽 하늘에서 지난밤의 상처로 피를 벌겋게 흘리며 떠오른다. 이를 지켜보던 아스떼까 사람들은 매일 아침마다 조마조마하게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를 고대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신인 전쟁의 신이자 태양신인 위칠로뽀츠뜰리의 상처를 치료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산 인간의 심장을 바치게 되었다.


이는 전승되어오는 고대 아스떼까의 신화다. 잔인한 의식을 치렀지만 이 신화는 태양신과 400개의 별들과의 전쟁은 고대 아스떼까 부족이 차례로 정복한 주변 부족국가들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신화를 통해서 고대 사람들은 유난히 태양에 집착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집트부터 잉카까지.


고대 멕시코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부터 0의 개념을 발견했고 이를 천문과 역학에 응용하여 오늘날 쓰고 있는 것과 소수점 이하까지 일치하는 달력을 사용했다. 그들이 남긴 피라미드 중에는 365라는 숫자로 이루어진 신전들이 있다. 많은 건축물들이 춘분이나 추분, 하지, 동지 등의 절기에 맞춰 신비한 현상이 나타나도록 설계되어있으며 오늘날에도 그 놀라운 신비를 목격할 수 있다.

 

 

      2000년 새 밀레니움이 시작되던 해의 춘분에 있었던 치첸잇짜 신전. 신전 계단에 그림자로 펼쳐진 깃털뱀 신의 하강 모습. 뱀꼬리는 신전 위에, 뱀머리는 신전 아래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구불구불한 뱀 그림자. 마야인의 천문학과 자연이 만든 놀라운 고대의 쇼.

 

 고대 멕시코 사람들은 춘분인 3월 2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믿었다. 그 믿음은 스페인 침략으로 고대세계가 멸망한 지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해마다 춘분이 되면 멕시코 전국의 피라미드들과 에너지가 강한 영험한 곳에서는 새해 새 태양의 에너지를 받으려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관이 연출된다. 게다가 3월 21일은 멕시코의 링컨으로 추앙받는 원주민 출신 대통령 베니또 후아레스 대통령의 탄신일로 공휴일이다.

 

 

      태양신전을 오르는 사람들


이날 멕시코 사람들은 떼오띠와깐을 비롯하여 마야의 땅에 있는 치첸잇짜, 멕시코 만에 있는 엘 따힌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유적지 피라미드와 여러 장소에서 태양에너지를 받았다. 필자도 이날 고대 멕시코 사람들의 성스러운 성지이자 오늘날에도 멕시코 사람들의 영혼의 장소처럼 여겨지는 떼오띠와깐을 다녀왔다.


떼오띠와깐은 멕시코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가 있는 고대유적지다. 기원전 100년경 발생해서 서기 750년경 멸망한 문명이다. 멸망한 후 500년이나 지난 후 등장한 아스떼까가 이들이 남긴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고 경외감에 사로잡혀 이곳을 떼오띠와깐 즉 ‘신들의 장소’라고 불렀다. 아스떼까의 신화에 의하면 천지가 암흑기였을 때 이곳에서 신들의 희생으로 태양과 달이 탄생하였다.


떼오띠와깐은 사방 20만 평방km에 인구 약 20만 명으로 당대의 바그다드나 고대의 바빌로니아, 고대 로마와 비교될 만큼 큰 도시국가였다. 고대 아메리카에서는 이처럼 큰 규모로 인구밀집의 복합도시는 없었다고 한다.


동트기 전 새벽에 출발하여 유적지에 도착한 시각이 약 7시. 이미 유적지 앞 도로주변은 이미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평상시 유적지입구까지 이어졌던 도로는 시시각각 몰려드는 배고픈 태양순례자들을 맞는 간이음식점과 노점으로 시장이 되어버렸다. 노점은 하얀 옷과 모자들 그리고 소원을 비는 각종 돌과 향들을 팔고 있었다.

 

 

      만들어진 제사상...노점에서 판다

 

하얀 옷차림을 하고 붉은 머리띠를 한 태양순례자들 틈에 끼어 유적지로 향했다. 유적지 위로 열기구도 둥실 떠올랐다. 이날은 5개의 입구 중 1번 입구만 제외하고 다 폐쇄되었다. 그리고 유적지 안 4km에 이르는 대로 역시 중앙을 막아 우회해서 태양신전을 향하도록 해 놓았다. 이는 유적지 끝에서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멀리서 본 태양신전 정상은 이미 하얀 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태양신전 아래에 이르자 한 변이 200m에 이르는 신전 밑변을 뱀처럼 빙 둘러싼 길고 하얀 순례자 행렬. 그 행렬에 끼여 기다린 지 한 시간 반 만에 신전을 오를 수 있었다.


오전 10시경. 신전정상은 이미 순례자들로 만원이었다. 고대의 피라미드들은 에너지의 근원이다. 고대인의 피가 흐르는 멕시코사람들은 특별이 이날 모두들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 태양에너지를 듬뿍 받고 소원을 빌었다. 저마다의 소원을 가슴에 품고 모두 태양 쪽으로 손을 쭉 뻗고 기도를 했다. 국민의 80%가 카톨릭이지만 태양에너지를 받는 것과 종교는 무관한 듯하다. 한쪽에선 성가가 들리지만 한쪽에선 곡물과 십자가 등으로 차려진 제상도 보였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이 믿는 어떤 귀중한 물건들을 들고 와 열심히 태양에너지를 모았다. 피라미드 모양의 돌, 수정, 곡식 혹은 동전 등.

 

 

      둥근 원을 만들고 그 안에 태양신께 바치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갓난아이를 업고 온 엄마와 아빠부터 연인들, 학생들, 노인들. 하지만 모두들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을 꼭 감고 열심히 소원을 비는 앳된 모습의 소녀에게 물었다. ‘뭘 빌어요?’ ‘음...공부 잘하게 그리고 건강을 빌었어요.’ ‘학생이어요?’ ‘네. 그래서 대학가고 싶다고도 빌었어요.’

 

 

      태양신을 향해 뻗은 손들

 

친구들과 이곳에서 5시간 떨어진 과나화또 주에서 왔다는 아가씨들, 또는 차로 18시간이나 걸리는 시날로아 주에서 온 가족, 일주일 걸려서 왔다는 산루이스포토시에서 온 아저씨. 인파만큼 사연도 각양각색이었다. 태양에너지를 받는 이유는 대부분 한해 건강하게 무사히 잘 보내고 한두 가지 이루고 싶은 소원을 비는 것이다.

 

 

     소원을 비는 모습도 각양각색...드러누워 온몸으로

 

태양신전은 200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원을 비는 것을 지켜보았을까. 신전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온통 하얀색 일색이었다. 일명 ‘죽은 자의 길’로 불리는 대로는 폭이 42m에 이른다. 하지만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대로 주변에 늘어선 23개의 왕궁과 신전에도 미처 태양신전에 오르지 못한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이들의 제사상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담은 듯하다.

 

신전 앞 광장에는 마치 고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화려한 깃털 관과 의상을 차려입은 고대인들이 태양신께 제를 드리는 춤이 한창이었다.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발목에 감은 마른 씨앗 껍질이 부딪쳐 내는 소리가 장단을 더하였다. 지켜보고 있자니 아득한 고대 세계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초록과 파란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깃털 관을 쓰고 재규어 가죽 무늬의 전사 의상을 차려입은 고대 댄서에게 물었다. '오늘 이곳에서 춤을 추는 것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그가 답했다. '고대 우리 조상들에게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절기는 4 계절을 의미했어요. 그 중 춘분은  새해의 시작이자 봄. 봄은 씨앗을 뿌리는 계절입니다. 추분은 추수를 하는 것이고요. 따라서 춘분에는 태양신께도 제사를 드리지만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비의 신에게 드리는 기우제의 의미도 있답니다.' 열심히 춤을 추던 댄서는 심리학자였다.


그 한편에 검은 칠을 한 얼굴에 깃털 관을 쓴 무당이 매캐한 꼬빨나무 향 연기를 사람들에게 뿌려주고 있었다. 연기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주 진지했다. ‘지금 무얼 하신건가요?’ 빠추까에서 왔다는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아. 이것은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이죠. 우리는 1년에 한번 이 의식을 해요. 그러면 1년 내내 건강하고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죠. 당신도 한번 해 보세요. 그러면 1년 동안 좋은 일만 생긴답니다.’ 그래서 했다. 올 한해도 즐겁고 행복하게 라고 빌면서.


이날 태양은 12시 26분에 신전 정상 위를 지났다. 하얗게 덮여있는 태양신전은 이미 만원이었다. 마치 구름이 하늘로 오르는 듯하였다. 곳곳에서 사람들은 둥글게 원을 만들고 서로서로 손을 잡았다. 마치 그들의 원에 태양에너지를 가득 채우려는 듯. 달 신전으로 가는 길 곳곳에 그런 원들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태양을 움직였을까? 오늘따라 태양에서 내리쬐는 볕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이날 기온은 33도에 달했다.

 

 

      태양신을 향해

 

달 신전은 태양신전보다 여유가 있었다.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지금까지 걸어온 죽은 자의 대로와 태양 신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로와 신전정상에서 움직이는 하얀 점들이 마치 개미떼를 보는 것 같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먼 하늘 끝에 검은 구름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지난 12월,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서 찍은 태양신전과 달 신전. 큰 신전이 태양신전.

 

태양에너지를 받는 새해지만 영리한 고대지도자들은 이제 비구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되지 못했던 당시에는 신관은 하늘을 관찰해서 신의 뜻을 읽어 정확하게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그들이 강력한 지도자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백성들을 굶겨서는 안 되었다. 언제나 식량을 확보해야 했으므로 언제 비가 오는지, 씨를 뿌려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수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을 했어야 했다.

 

 

      열기구에서 찍은 태양신전과 달 신전. 멀리 보이는 작은 신전이 달 신전.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아 대지가 바짝 마르는 건기를 무사히 넘기고 옥수수 씨를 뿌릴 수 있도록 비의 신이 구름을 몰고 오기를 고대 사제들은 춘분에 맞춰 기우제도 지냈을 것이다. 신관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듯 멕시코는 그 다음 날부터 매일 비가 내리고 있다. 농부들은 밭을 갈고 옥수수를 뿌릴 것이다. 태양신과 비의 신이 그들의 정성스런 기도에 답한 것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