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하늘을 나는 사람들, 볼라도레스

미키라티나 2010. 6. 26. 01:44

습기와 고온으로 불쾌지수가 높은 장마의 계절이다. 원유유출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멕시코 만은 거의 1년 내내 우리나라 장마처럼 무더운 날씨다. 이처럼 더운 곳에서도 문명의 꽃은 피었으니 기원전 1300년 전의 또또나까 문명이다.

 

 

 

엘 따힌 유적지

 

또또나까 문명의 엘 따힌 유적지는 365개의 벽감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형 신전이 유명한 유네스코 보호 유적지다. 이 문명이 200여 년 간 지배했던 이 지역은 오늘날 아이스크림과 과자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바닐라의 원산지다.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명성의 바닐라산지로 바닐라로 만든 술 사나뜨와 바닐라콩으로 만든 꽃과 동물 민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또또나까 문명에서는 태양신에게 풍작을 기원하고 비를 부르던 의식을 치렀는데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스페인어로 ‘나는 사람들’ 이라는 뜻의 볼라도레스 이야기다.


엘 따힌 유적지를 향해 가다보면 가느다란 피리 소리와 작은 북 소리가 들린다. 유적지 입구 바로 앞 공터에 사람들이 원을 이루고 구경을 하고 있다. 공터 가운데 꼭대기에 사방으로 단이 달린 긴 나무기둥이 하나 서있고 붉고 번쩍번쩍한 의상을 입은 다섯 명의 원주민 남자들이 그 기둥을 돌면서 춤을 추고 있다. 모두 빨간 바지에 하얀 셔츠 그리고 노란 술이 수놓인 숄을 가슴에 두른 촌스러운 의상이다. 게다가 머리엔 작은 거울 조각이 사방으로 붙어 있고 마치 우리나라 농악대의 상모처럼 빨강, 파랑, 초록, 노랑, 하양 등 오색 긴 끈이 달린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우에우에춤 추는 볼라도레스

 


고대에는 이 나무기둥 높이가 40m 이었다고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나무기둥은 하늘을 찌르듯 곧게 뻗고 다섯 명의 무게를 견딜 만큼 단단해야 한다. 또또나까 사람들은 나무를 발견하면 자르기 전에 신성한 의식을 벌였다. 술과 음식을 바치고 피리와 작은 북으로 연주하며 나무를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으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는 우에우에 춤으로 조상에 대한 예우로 ‘불과 세월의 신’인 우에우에떼오뜰 에게 바치던 것이다. 볼라도레스가 장대를 올라가기 직전 기둥을 돌며 추는 춤이 바로 이 의식이다.


신에게 춤과 연주를 바친 후 기둥에 오른다. 처음에 네 명이 차례로 기둥 꼭대기까지 올라가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 사각형 단의 한 면에 한사람씩 앉는다. 그리고 길게 늘어뜨려진 줄을 끌어 올려 기둥을 딛고 네 명이 빙빙 돌며 줄을 감는다. 이 줄이 풀어지면서 볼라도레스가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줄을 다 감으면 마지막 한 명이 올라 단안에 있는 기둥 끝에 올려진 보통 접시 크기의 둥근 단에 선다. 이제 기둥 끝에는 네 명이 가장자리의 단에 앉아 있고 마지막으로 오른 사람이 기둥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5명의 무게로 기둥 끝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아찔하다.

 

 

 

 

                                         기둥을 오르는 볼라도레스 

그냥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기둥꼭대기에 선 사람은 한술 더 뜬다. 가느다랗고 작은 피리를 불고 작은 북을 치면서 각 방향마다 멈춰 한발로 서고 나머지 발은 뒤로 죽 빼며 머리를 숙인다. 이는 바람의 신과 동서남북 사방의 신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빨리 한쪽 발을 구르며 춤을 추듯 둥근 단을 한 바퀴 돈다. 모든 행위는 연주를 하면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기둥꼭대기에서 펼쳐지는 곡예를 보면 손에 땀이 날만큼 아슬아슬하고 어지럽다.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누. 신에게 인사를 마치면 그 조그만 둥근 단에 엉덩이를 두고 태양을 향해 드러눕는다. 마치 특별한 제물처럼.


네 명의 볼라도레스는 태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신성한 새들 즉 앵무새, 독수리, 께찰새(과테말라의 국조로 초록색 긴 꼬리가 아름다운 작은 새), 종달새로 가장한 사람들이다. 손바닥만한 단 위에 누운 사람은 다시 연주를 한다. 그러면 그 연주에 맞춰 네 명의 새 인간들은 밧줄을 허리에서 한쪽 다리에 감고 발끝에 엮어서 다리를 꼰 후 한꺼번에 뒤로 떨어지며 비상을 한다. 거꾸로 매달린 채 머리를 아래로 하고 양팔을 벌려 빙글빙글 돌면서 마치 춤을 추듯이 천천히 내려온다. 발이 거의 지면에 닿을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하다가 다리에 감긴 줄을 손으로 잡고 몸을 빙글 돌려 한 사람씩 일어나는 것이다. 한숨 돌린 구경꾼들은 힘찬 박수를 보낸다. 약 10여 분 간의 아찔한 공연을 끝내면 직접 구경 값을 걷으러 온다.

 

 

  

 

 

 

 

 

 사실 볼라도레스의 비행장면은 자못 걱정스러우면서도 아주 신기하다. 하지만 그저 지나치기에는 그 의미가 심오하다. 고대에는 13번 회전을 했다한다. 4라는 숫자는 고대세계의 사방을 의미하고 13번 회전은 13층의 고대천상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4와 13을 곱하면 52가 되는데 이는 신성한 숫자로 고대 중미 문명의 달력에서 1세기에 해당하는 52년을 상징하며 이는 태양의 주기다. 따라서 만물의 아버지인 새 태양의 입성을 알리는 것이다.


이제는 한낮 관광객을 위한 쇼가 되어버린 볼라도레스는 많이 변형되었다. 원래 40m의 나무기둥이 사용되었지만 18m, 20m로 작아져 13번의 회전이 불가능하다. 또한 나무기둥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고정시켜놓고 있다. 하지만 예나지금이나 네 명의 볼라도레스는 호흡을 잘 맞추며 회전을 해야 한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균형을 잃게 되면 모두 추락해 버리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의식을 치르기 일주일 전부터 지켜야 할 금기사항이 많았다고 한다. 몸을 청결히 유지하고 아내나 여인을 멀리하였으며 음식을 가렸다고 한다. 볼라도레스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아들로 대를 이어 내려오는 마을 전통이다. 아이들은 걸음마를 배우면서 어른들이 하는 공연을 눈으로 익히고 따라하면서 자란다.


그러나 볼라도레스에게 공연의 대가로 급여를 지불하는 곳은 테마파크 한군데뿐이고 그 외의 공연은 보조를 전혀 받지 않는다. 오로지 정부에서는 공연장소를 내어줄 뿐이고 볼라도레스들은 구경꾼들이 주는 팁이 그들 수입의 전부다. 따라서 위험하지만 수입이 신통치 않은 이 공연을 할 젊은이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므로 멕시코에서 이 신기한 공연을 보게 되면 꼭 팁을 주자. 목숨을 걸고 하는 위험한 전통의 대가라고 생각하자.


Tip; 멕시코 전국에 18개의 고정 공연장이 있다. 기둥높이는 18m에서 37m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멕시코시티 역사인류학 박물관, 떼오띠와깐 유적지, 카리브 해 휴양지 깐꾼의 스카렛 테마파크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뚤룸 유적지의 볼라도레스

(부산일보 2010년 6월 24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