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사흘 밤낮으로 마시고 춤추며... 따라우마라 부족의 부활절 축제

미키라티나 2010. 4. 23. 02:00

 

앙증맞고 귀여운 개 치와와의 원산지는? 바로 멕시코 치와와 주다. 미국과 국경이 접한 멕시코에서 가장 큰 주 치와와는 해발 3300m의 고산과 함께 사막이 있다. 치와와 시에서 태평양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 중의 하나인 태평양치와와기차가 다닌다. 그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구리협곡은 빼어난 경관으로 유명하다. 구리협곡 또는 코퍼 캐넌이라 불리는 지역은 마치 오르간처럼 생긴 웅장한 협곡들이 그랜드 캐넌보다 훨씬 큰 규모로 아메리카의 장관이라 불린다. 그리고 아직도 동굴혈거 생활로 원시적인 삶을 이어가는 따라우마라 원주민들의 공동체가 있다. 

 

태평양치와와기차를 타고 가면 만나는 길

 

 


구리협곡에 기대 사는 따라우마라 부족은 라라무이 즉 ‘달리는 발바닥’으로 불린다.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험한 산지에서 마을을 이루지 못하고 띄엄띄엄 떨어져 자연동굴에 움막을 짓고 맨발로 살아간다. 일 년 중 4월의 부활절축제와 12월의 과달루뻬 성모축제는 그들에게 가장 큰 행사다. 특히 노로가치과 바시고치 마을의 부활절축제는 매우 유명하다. 그 이야기다.

 

                                        따라우마라 엄마와 아기, 뒤로 보이는 구리협곡

 

                                           따라우마라 여인

 

따라우마라 가족, 집이 절벽에 기대어 지어졌다. 관광호텔과 가까운 거리여서 사는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가족 모두 신발을 신었다.

 

치와와 시에서 출발하여 가장 큰 따라우마라 공동체인 과초치로 갔다. 이번엔 기차가 아니라 택시로 냅다 달려서도 5시간이 걸렸다. 4월인데도 하얀 눈발이 펄펄 날렸다. 멕시코가 덥다고? 고원은 늘 서늘하고 춥다. 과초치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다. 협곡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따라우마라 사람들에게 마을은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끄릴에서 들어가는 구리 협곡의 작은 따라우마라 마을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치와와는 라라무이 부족들의 땅이었다. 그러나 스페인군에 쫓겨 산으로산으로 숨어들었다. 일부는 장원과 광산에서 노예처럼 일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약 98,000 명 정도가 남아있다.


이들은 소나무 통나무로 만든 집 또는 자연동굴에서 산다. 구리협곡에는 기암괴석들이 많아 살만한 동굴들이 아주 많다. 선조들이 살던 동굴 집 유적지들도 있다. 현재 살고 있는 동굴 집 대부분은 조상대대로 물려오던 집들이다. 이전에는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곳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반 유랑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제수이트 파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신앙심이 깊어진 이들은 이제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만난다. 

 

                                 커다란 동굴 속에 지어진 따라우마라 집


바시고치는 여기서 2시간 정도 더 들어간다. 과초치 협곡의 입구와 가는 길은 가끔 아슬아슬한 비탈을 엉금엉금 오르내려 간담이 서늘해지지만 그만큼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달리다보면 길 끝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물론 그 아래는 아득한 낭떠러지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초록 옥수수 밭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들판을 지나면 띄엄띄엄 집들이 보이고 들판 한 가운데 학교와 제수이트파의 소박한 성당이 덩그러니 서 있다. 전형적인 따라우마라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있는 작은 성당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첩첩산중에 살던 사람들도 일 년에 두 번 성장을 하고 이곳에 모인다. 몇날 며칠을 걸어서 말이다. 성장이란 신발까지 갖춰 신는 것을 의미한다. 평상시에 그들은 맨발이다. 너무 가난해서 신발 살 여유가 없다. 신발이래야 고작 낡은 타이어 고루를 댄 샌들일 뿐인데. 

 

따라우마라 소녀, 겨우 12살, 시집갈 나이다.


남자들은 벗은 온 몸과 얼굴에 빈틈없이 하얀 반점을 칠하고 긴 막대를 들고 머리에는 깃털 관을 썼다. 마치 아프리카 토인을 보는 듯하다. 허리춤에는 보따리를 질끈 묶었다. 성당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마을별로 모여 춤을 춘다.

 

 

                                           바시고치 마을의 부활절 축제로 성당에 모인 사람들


부활절 주간의 목요일 미사를 시작으로 부활절 축제가 막이 올랐다. 라라무리의 모든 정신세계를 나타낸 전통 의례로 색색의 고유의상을 입고 옛 악기들인 ‘북과 피리’만 가지고 의식을 치른다. 맨 앞 사람이 마을을 상징하는 커다란 깃발을 들고 그 뒤에 줄을 이루어 군무를 춘다. 그 리듬은 무척 단순하여 똑 같은 스텝이 반복되는 지루한 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북을 치면서 춤만 춘다. 이렇게 하루에 다섯 번 행렬을 지어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춤을 춘다. 소나무로 만든 아치 아래를 통과하고 마을의 골목마다 예수님이 쓰러진 자리를 표시하고 그곳을 돈다.

 

 

 따라우마라 여인들의 성장한 차림새

 

                                    남자들은 온몸에 하얀 칠을 하고 등에 보다리를 매었다.

 

 이틀, 사흘 내리 춤을 추고도 지치지 않는다

 

 

나흘째 되는날 몸의 하얀칠은 다 지워졌다

 

이렇게 목요일, 금요일 밤낮으로 행진을 하고 춤을 춘다. 보는 사람은 좀이 쑤시는데 그들은 지칠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쉬지 않고 밤새도록 춤을 추며 막걸리 맛이 나는 옥수수 발효주 떼스위노와 음료수인 삐놀레를 마신다. 떼스위노는 특별한 종류의 옥수수 싹을 틔워서 말려서 솥에 넣고 24시간 푹 끓여서 식힌 다음 뚜껑을 덮고 오래 놔두면 스스로 발효되어 술이 된다. 많이 마시면 취하는 8도 정도의 곡주다. 하지만 병에 담아 가면 폭발할 정도로 계속 발효된다. 삐놀레는 볶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음료다.


이렇게 이틀간 낮과 밤을 꼬박 새며 춤추고 나면 몸에 칠한 하얀 분장은 다 지워지고 피곤과 술에 절어 있다. 토요일 아침, 유다 화형식을 한다. 사람들은 성당 마당에서 풀로 만든 인형을 악마의 아들딸로 분장시키고 메스티소인 차바치의 옷을 입힌 남녀인형을 조롱하고 비난한 후 짓뭉갠 다음 화형 한다.

 

                                 신발을 고쳐매는 따라우마라 소년

 

따라우마라 부족의 남자들은 훌륭한 달리기선수들이다. 보통 수확기가 끝난 9월쯤 라라히빠리라고 남자들의 공놀이 경주가 벌어진다. 팀별로 벌어지는데 보통 100km를 달리면서 경주를 한다.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긴 경주 거리로는 750km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내 달렸다고 한다. 공은 야구공만한 크기로 가벼운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 이를 앞으로 던져서 그 공이 떨어지기 전에 달려 발로 차야한다. 이때 발등으로 공을 차면서 한번에 7km에서 20km의 산길을 달린다. 밤에는 횃불을 밝히고 밤새도록 40시간 이상도 달린다.  둘에서 다섯 명이 참가한 두 그룹이 서로 공을 던지면서 달린다. 해발 2000m 가 넘는 산악지대를 넘나들며 맨발로 밤을 새서 달리는 그들의 재주는 신기에 가깝다. 여자들도 달리는데 그들은 공 대신 수틀처럼 생긴 둥근 나무 테를 던진다. 아리구에따 또는 로베마라고 한다.


따라우마라 부족은 결혼은 매우 일찍 한다. 보통 여자애들 12세, 남자애들 15세 정도면 결혼을 한다. 그리고 대부분 여성들이 모든 생계를 책임진다고 한다. 남자들은 빈둥대고 논다. 들판에 나가보면 여성들이 옥수수농사를 짓고, 소와 양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들은 그저 축제를 준비하고 춤을 추고 달리기를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일이다. 그 나머지 시간들은 그냥 할일 없이 빈둥거린다고 해서 외지에서 온 남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라나? 어쨌다나.  

 

                               그들의 악기인 비올린을 연주하는 따라우마라 남자, 뒤는 구리협곡이다.


Tip; 치와와 주에 속하는 디비사데로 역은 구리협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전망대다. 구리협곡을 감상할 수 있는 여러 전망대 중 가장 손쉽게 갈 수 있어 기차도 이곳에서 15분을 정차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구리협곡의 전망은 인상적이다. 디비사데로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절벽위에 지어진 호텔이 하나 있고 따라우마라 원주민 여인네들이 솜씨 좋게 만든 예쁜 바구니나 인형, 악기 등 그들만의 민예품을 판다.

 

디비사데로역에 정차한 태평양치와와 기차 

 

                               따라우마라 여인들의 수공예품 

 

로스 모치스에서 출발한 기차는 디비사데로 역을 30분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기관사가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산 라파엘 역에서 잠시 정차한다. 정차하는 시간동안 따라우마라 원주민 아낙들이 손에 바구니들을 들고 와 일렬로 서서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바구니를 들어 보인다. 하지만 제 물건을 파느라 시끄럽게 호객하는 소리도 없다. 그저 조용히 들고 누군가가 그들의 물건을 가리키면 그제야 그것을 손님에게 건네주고 돈을 받는다. 너무도 조용한 사람들이라 물건을 파느라 악다구니도 쓰지 않는다(페루의 고산지대인 마추픽추, 쿠스코와 훌리아까 역에서의 모습과 정반대라 아주 인상적이다).

 

기차가 역에 정차하면 민예품 파는 여인들이 창밖에 조용히 서있다.

 

이곳은 해발 2400m 가 넘는 고산으로 여름에도 아주 춥다. 하지만 아낙들 대부분은 맨발이다. 너무 가난해서. 그들이 파는 바구니들은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바구니는 야자 잎을 엮어서 만들었다. 그 밖에 나무를 깎아 무늬를 넣은 바이올린, 직물 벨트, 망토, 따라우마라 인형, 도구들, 장식품, 주전자, 양털덮개, 지갑, 치마, 수놓은 블라우스, 북 등의 민예품등을 판다.

 

 

                                             슬픈 눈망울의 여인

 

                             기차가 떠나도 그대로 보고있다.  

 

디비사데로 바로 전 뽀사다 바랑까 역에는 몇 개의 호텔들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여러 곳의 전망대를 둘러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호텔들은 관광패키지로 들리는 매우 비싼 호텔들로 배낭여행자들은 대부분 그 다음역인 끄릴에서 묵는다. 끄릴은 구리협곡을 투어 하는 베이스로 최적의 장소다. 하루에 네 번 기차는 이 역들을 지나간다. 치와와에서 출발한 기차 두개 그리고 로스 모치스에서 출발한 기차 두개. 디비사데로에서 끄릴까지는 50km 거리로 차로 이동할 수 있으며 디비사데로에서부터 치와와까지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 대부분 관광객들은 디비사데로나 끄릴에서 내려 구리협곡을 투어하고 나서 치와와 시로 간다.  (부산일보 2010.4.1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