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설 속의 엘도라도, 보고타

미키라티나 2011. 3. 3. 23:42

 

 

마약, 게릴라, 마피아 그리고 커피. 콜롬비아하면 먼저 연상되는 것들이다. 역사상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의 이름을 딴 꼴롬비아는 ‘엘도라도’ 전설의 근원이자 세계적인 에메랄드와 코카인산지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의 무대이기도 하다. 아! 뚱뚱한 사람들을 그린 화가 보떼로, 너무나 섹시한 가수 샤키라도 있었구나.

 

광활한 대지 위에 다양한 기후와 천연자원으로 무한한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뿌리 깊은 내전은 현재까지 이어져 화약내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남미국가들 중 6.25 전쟁에 참전한 유일한 나라로 우리와는 오랜 혈맹관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야노라 불리는 초원지대에서는 방목이 이루어진다. 위 사진을 찍은 비야비센시오는 게릴라와의 전투로 유명하다. 사진은 평원에 뻗은 도로에서 운전하면서 졸지말라는 표지판이다.

 

 

매일 뉴스에 게릴라와의 전투장면이 보이며 이 나라의 무기와 마약에 깊이 관계한 미국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반미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넘쳐 나는 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이 콜롬비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 비자가 없는 대통령 그리고 공식적인 정부가 있지만 지방에서 또 하나의 정부로 군림하고 있는 게릴라와 그보다 작지만 실세인 마피아와의 삼각 구도로 뒤얽혀 있는 복잡한 정가. 그리고 마약 경제와 ‘밀수 대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어 살벌할 것 같지만 의외로 유난히 다혈질적이고 감정이 풍부하며 인정도 많아 몇 마디만 나누면 금방 친구가 될 정도로 사람들이 살갑다.

 

집앞 골목길에서 살사를 추는 사람들. 춤은 일상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춤을추고 살사는 어디에서나 흐른다. 버스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길에서도. 온갖 잔치는 물론이고.

 

 

가무잡잡한 피부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미인들이 많고 활달하고 친근한 성격으로 금방 ‘아미고’를 외치는 매력적인 남자들도 많은 나라. 특히 열정적인 살사의 본고장답게 풍요롭고 활기 넘치는 콜롬비아는 군사 강대국이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나라답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전형적인 정열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과 너무도 흡사한 따뜻한 정을 가진 나라다. 수도 보고타 이야기다.

 

미인이 많은 콜롬비아의 유치원 아이들

 

활기 넘치는 보고타는 백두산보다 더 높은 해발 2,600m의 거대한 분지 위에 자리한 약 800만 명의 대도시다. 고산도시라 낮은 덥고 비가 오거나 밤에는 약간 추운 쾌적한 가을 기후를 보인다. 보고타는 평화로운 안데스 칩차족의 도시였으며 엘도라도 즉 황금향전설이 시작된 곳으로 오늘에는 ‘남미의 아테네’라고 불릴 정도로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다.

 

해마다 8월, 바람이 불면 연날리기 행사가 펼쳐진다.

 

 

식민지시대의 건물과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이 도시는 얼마나 넓은지 한쪽은 비가 오는데도 다른 쪽은 해가 나 있다. 그러나 우기에는 2시간 정도 쏟아지는 폭우로 미쳐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시내는 물난리가 나고 전화선이 잠기기도 한다.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는 1650년 세워진 아름다운 예수상의 이름을 딴 몬세라떼 언덕이 있다.

 

 

언덕에 오르면 바로 아래가 맨 처음 보고타가 시작되었던 구시가지다. 오른편은 노르떼로 스카이라인과 고급저택들이 들어선 신시가지가 있고 왼쪽은 수르로 산등성이로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와 나트막하게 펼쳐진 칙칙한 집들이 있는 빈민가다.

 

 

보고타의 심장인 구시가지에는 콜롬비아를 해방시킨 남미독립의 영웅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볼리바르 광장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블루의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멀리 하얀 몬세라떼의 예수상이 보이는 정사각형의 광장에는 나들이 나온 시민들과 동그랗게 구경꾼들에게 에워싸인 채 선전에 열중하고 있는 약장사가 한가로운 오후의 적막을 깨고 있다.

 

벼룩시장의 화폐들. 가만히 보니 천원짜리가 다있네.

 

광장 동쪽으로 몬세라떼 언덕을 배경으로 한 대성당이 위엄 있게 서 있다. 맞은편에는 프랑스풍의 시청이 있고 남쪽에는 그리스양식의 의회 건물이, 북쪽에는 대법원 건물이 서있다. 대성당 뒤쪽으로 라 칸델라리아라는 예쁜 이름의 거리가 있다. 거리는 식민지시대에 귀족들이 살았던 하얀 벽돌담 집과 돌바닥으로 포장된 좁은 골목길에 운치 있는 정원, 나무 발코니, 동화처럼 장식된 카르멘 성당, 박물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보고타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극장과 카페들이 즐비하며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중앙광장의 대성당 그뒤로 몬세라떼 언덕이 있다.

 

눈에 익은 그리스풍의 의회 건물을 끼고 나오면 바로 정부청사와 대통령궁이다. 하루 몇 차례씩 대통령궁 근위병들이 햇살에 금빛투구를 반짝이며 행렬을 지어 거리를 건너는 모습이 보인다.

 

대통령궁 근위병들

 

거리를 돌아 다시 광장으로 나오면 지붕에 앉아 마치 지붕수리를 하는 사람과 그 앞에 있는 시청 건물 2층 창가에 창틀을 잡고 창에 기댄 사람이 눈에 띈다. 이는 실물 크기의 조각들로 언뜻 보면 진짜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익살스럽다. 근엄한 관공서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이처럼 슬며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들의 여유에 콜롬비아에 대한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시청 건물의 창문에 기대어있는 조각상

 

상가 건물 지붕위의 남자

 

 

시청을 돌아 나오면 보고타에서 내부 장식이 가장 아름다운 라 콘셉시온 성당이 있다. 성당을 끼고 있는 이 거리는 큰 시장으로 많은 상점과 노점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쇼핑하러 나온 시민들과 호객꾼 그리고 버스와 차들이 뒤엉켜 있는 도로에서 짙은 화장과 야한 옷차림의 거리의 여자들까지 합세해 매우 혼잡하다.

 

 

게다가 가게마다 크게 틀어 놓은 살사로 상당히 소란스럽다. 큰 도로를 따라 양편으로 귀금속 가게와 식기류나 철물 가게가 들어서 있고 벽에 기대서서 지나가는 남자들과 흥정하듯 대낮에도 영업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불과 한 블록의 사이를 두고 대통령 궁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청와대 바로 옆에 남대문시장이 서 있는 형상이다.

 

 

시장이야기가 나온 김에 재미있는 보고타의 벼룩시장에는 쓰레기로 버리는 빈 콜라 캔이나 화장품 용기에서부터 온갖 잡동사니는 다 나와 있다. 각국 화폐를 수집 판매하는 코너에서 이 순신 장군의 얼굴이 선명한 한국 지폐는 물론이고 현재는 박물관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한국의 아주 옛날 돈들이나 골동품도 가끔 눈에 뜨인다. 이런 물건들은 6.25 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콜롬비아 병사들이 들고 나왔던 것이 대부분이다.

 

 

콜롬비아는 한국과 피를 나눈 형제 관계다. 보고타에는 콜롬비아와의 혈맹관계를 기념하는 뜻으로 1973년 한국정부가 석가탑을 그대로 본뜬 탑에 전사한 콜롬비아 장병들의 이름을 새겨 정부에 선물한 우정의 탑이 있다. 그러나 현재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이 탑은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는 없다.

 

육사 건물 안에 있는 석가탑

 

 

 

한편 보고타에는 엘도라도답게 가치로 따지자면 엄청나다는 황금유물박물관이 있다. 귀중품들이라 그런지 박물관도 예사롭지 않다. 고대문명에서 만든 아름다운 황금세공품들이 3층의 거대한 금고 방에 전시되어 있고 안내원을 동반하여 제한된 시간 동안만 둘러보게 되어있다. 33,000점의 유물 중 황금장식품들은 8,000점으로 고대문명이 남긴 귀중한 역사예술품들이다. 그 중 ‘황금뗏목’은 온몸에 금을 바른 황금사나이가 호수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황금향전설의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한 학기 수업료가 우리 돈으로 500원이라는 콜롬비아국립대학은 레닌과 스탈린, 체 게바라까지 사회주의 이념의 주요 인물들의 커다란 초상화나 민중화 벽화와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혁명을 선동하는 낙서가 건물마다 그려져 있다. 쓰레기가 널려있는 잔디밭에선 수수한 차림의 대학생들이 자유로이 토론에 열중하는 이념의 자유공간지대이다.

 

 

보고타에서 50km 북쪽으로 1시간 반을 가면 시파키라라는 작은 마을에 신기한 소금성당이 있다. 이곳은 1954년 산 전체가 거대한 소금으로 되어 있는 것이 발견된 후 암염을 캐는 소금광산이었으나 1992년 폐쇄되었다. 그러나 1995년 60m 아래에 있는 소금동굴에다 성당을 만들어 신도들과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소금성당은 150만 톤의 소금으로 75m 길이에 18m 높이의 규모로 만들어 8,4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내부가 어둡고 길이 많아 자칫 위험에 처할 수 있으므로 가이드와 함께 다녀야 한다. 일요일에는 예배를 보는 진짜 성당으로 내부의 모든 기둥과 조각이 자연적인 거대한 소금덩어리로 된 성당이다.

 

 

사실 콜롬비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 보고타는 그 두려움을 날려준 도시다. 비록 시가지는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니지만 상당히 기능적이었다. 사방으로 시원스레 뚫린 도로와 긴 나선형으로 만든 뒤 예쁘게 칠해진 육교는 장애인이나 자전거족들이 다니기 편하도록 계단을 없애고 평평하게 되어있어 그 배려에 감탄하게 했다.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그런 작은 일들이 보고타가 따뜻한 도시로 기억되는 열쇠들이다. (부산일보 2011년 1월 20일 게재)

 

보고타의 남대문 시장 산 안드레시또 시장의 노점 피자 가게 아저씨. 종일 피자 구우면서 싱글벙글 즐거운 인생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육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