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고고학 미스터리, 산 아구스틴

미키라티나 2011. 3. 4. 00:17

 

 

콜롬비아를 다니다 보니 남미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외국 관광객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찾아가는 고고학유적지에선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등 유독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미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콜롬비아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리라.

 

 

산 아구스틴과 티에라덴트로는 문명이나 유적지에 큰 관심이 없다하더라도 콜롬비아를 방문했다면 꼭 가 볼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매우 독특한 곳이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유적지로서 쌀 생산으로 유명한 남부 윌라주 해발 1700m에 있다.

 

 그 기원에 대해 여전히 비밀에 싸여있는 거대한 석상들이 25km 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산 아구스틴과 부드러운 돌을 파내고 화려한 채색 벽화로 장식한 묘실이 있는 티에라덴트로(땅속)라는 유적지가 있다. 이 중 티에라덴트로는 남미에서 발견된 고대분묘 중에서 유일한 형식으로 유명하다.

 

고고학 공원 전경

 

 

추운 보고타를 출발한 뒤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내려가니 땀이 샘솟듯 나는 열대다. 차창 밖으로 비옥하게 보이는 논과 화려한 꽃들이 펼쳐진 평원을 지나는가 싶더니 다시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산길을 오른다. 멀미와 피로로 지쳐갈 즈음 여름에서 봄으로 들어선다. 12시간 동안 사계절을 다 겪으며 도착한 곳은 온화한 날씨 속에 상쾌한 공기와 부드럽게 능선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산 아구스틴 마을이다.

 

 

마을을 휘둘러 흘러가는 막달레나 강바닥에서부터 이어지는 아름다운 협곡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이 조그마한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순박한 표정은 평온함 그 자체다. 산 아구스틴은 또렷하고 구성미가 뛰어난 아름다운 수많은 석상 군으로 유명하다. 막달레나 강 주변 500 평방km에 걸쳐 크게 분묘군인 ‘우상들의 언덕’, ‘석상들의 언덕’ 그리고 신전과 독특한 조각들이 많은 ‘고고학공원’으로 나뉜다.

 

아이를 거꾸로 들고 있는 이 조각상은 키가 좀 크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고고학공원은 산 아구스틴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마을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 걸어가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나니 옥수수 밭이 펼쳐졌다. 상큼한 아침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걷는 길도 유쾌했다. 그렇게 걷다 이태리에서 온 일행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온 고고학 교수님들이다. 이게 웬 떡이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뜻하지 않게 만난 교수님들과의 해박한 설명이 곁들인 고고학산책으로 산 아구스틴 유적지는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다가와 유물들이 있다며 우리를 집으로 이끌었다. 방 한 구석에는 흙이 묻어있는 토기와 토우, 돌장신구, 화살촉, 항아리, 조그만 조각품 등 언뜻 보기에도 유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다. 밭을 파다 발견한 것들이라며 사라고 했다. 유물을 사고파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몰래 파는 것이다. 피렌체 교수님은 진품이라고 했다. 문화재 관리국에선 통탄일 일이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조상들을 팔고 있었다.

 

 

고고학공원에 있는 여러 개의 둔덕에는 신전, 다양한 형태와 크기와 양식으로 만들어진 35개의 석상들, 주거지, 돌널 판에 덮인 묘지와 입상들이 널려 있었다. 삼각형에 반달처럼 생긴 커다란 눈과 뾰족한 덧니를 드러낸 얼굴을 시작으로 독수리, 뱀, 재규어, 개구리, 인간 등의 석상들과 기하학적 도형의 무늬를 가진 정사각형, 직사각형 등의 조각들이 공원 전체에 넓게 흩어져 있었다.

 

세모난 얼굴에 드러난 송곳니의 조각상

 

너무나 사실적인 동물조각들이 있는가 하면 괴물처럼 보이는 추상적인 형상들과 의인화된 조각들이 20cm에서 7m까지 다양한 크기로 모두 약 500여개에 이른다고 하였다. 석상들은 보석이나 금, 토기들이 발견되었던 묘지 입구에 세워진 것들이다. 괴상하고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곳은 종교의식을 치르던 곳으로 약 천 년 전부터 문명이 있었으며 잉카 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사실적인 얼굴의 조각상

 

 

1758년 이곳을 방문했던 한 스페인인이 쓴 ‘자연의 경이’라는 책에 소개된 후 1913년 독일 고고학자가 연구하기 시작하여 여러 학자들에 의해 오늘날에 이른다. 그 기원이나 정확한 역사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곳은 중요한 인물들의 묘지였거나 종교 센터 또는 지배자들이 통치의 한 방법으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라는 설이 유력하다.

 

돌멘분묘의 크기

 

 

고고학공원에서 두드러진 곳은 ‘메시따 B’였다. 이곳에는 4m 크기의 사람 석상과 삼각형 얼굴상, 고대 멕시코의 아스텍 신화에 등장하는 뱀을 문 독수리 상 등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조각상은 제주도 돌하르방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돌 지붕을 이고 여러 개의 입상들이 죽 둘러 서있는 돌멘 형식의 분묘는 매우 독특했다. 분묘를 둘러싼 여러 개의 석상 중에 무기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마치 입구를 지키듯 양쪽으로 전사처럼 서 있었다. 가슴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도 보였다. 슬쩍 보기에도 중요한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반달 눈과 송곳니의 세모얼굴

 

뱀을 문 새 조각상은 멕시코 고대아스텍의 뱀을 문 독수리를 연상시킨다.

 

 

아이를 거꾸로 들고 있는 인물과 그를 호위하는 무사들의 돌멘분묘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인물의 돌멘분묘

 

메시따 B를 지나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내려가니 푸른 이끼를 뒤집어 쓴 개구리 조각상이 길가에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3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커다란 고사리 나무들 사이로 주라기 공룡이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지금껏 지나온 곳들도 그랬지만 고고학공원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던 ‘푸엔테 데 라바파타스’가 있다. 이곳은 위에서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이 흐르는 시내 한 가운데 솟아있는 아주 넙적하고 단단한 하나의 화강암 바위를 세련된 기술로 다듬어 기하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물길을 새겨 놓은 복잡한 미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물길은 약 10cm 폭으로 꾸불거리며 이리저리 엉키면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경주의 포석정처럼 생긴 물길이다.

 

그저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의 푸엔테 데 라바빠따스. 어떻게 이 단단한 화강암을 팠을까? 얼마나? 몇명이나?

 

 

물길은 뱀, 도마뱀, 인간 형상을 한 도롱뇽을 나타낸 3개의 웅덩이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은 커다랗고 납작한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다. 이는 흘러가는 시냇물과 그 가운데 솟은 바위의 완벽한 조화로 자연을 도구 삼아 만든 높은 수준의 걸작이다.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수로를 만들기 위해 단단한 바위를 조각한 도구는 또 다른 돌이라는 것이 더 놀라웠다. 엄청난 노동력과 시간이 들어간 작품이었던 것이다. 아스텍, 마야, 잉카 등 중남미 고대문명들은 고도의 문화를 꽃 피웠지만 철기를 쓸 줄 몰랐다. 스페인 군이 침략했을 때 그들은 여전히 석기를 쓰고 있었다.

 

물길은 끊어지지않고 모두 이어진다.

 

 

각각 다른 곳에 위치한 3개의 웅덩이는 신성한 의식을 위해 몸을 정화하던 곳으로 당시 사회의 계층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학자들은 이곳을 희생의식을 치르던 종교장소라고 보고 있다.

 

이곳을 건너서 언덕을 오르면 유적지가 한눈에 보이는 알또 데 라바파타스가 있다. 산 아구스틴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2600년간의 시간을 나타내는 석비가 있다고 했다. 이곳은 오래된 농경지이자 주거지로서 다양한 크기의 돌로 만든 묘지를 비롯하여 의식용의 여러 가지 동물과 인간을 조각한 석상 그리고 기원전 3300년까지 소급되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본 석상과 좀 다른 형태의 조각상

 

 

사실 산 아구스틴은 아무도 정확하게 그 기원을 모른다고 한다. 문자가 없어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많은 석상들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조차 아직도 미스터리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사례처럼 콜롬비아의 고고학 유적지 연구와 보호에 유네스코의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반갑게도 산 아구스틴의 이 멋진 고대 조각상들은 세계로 수출되는 콜롬비아 커피봉지에서도 만날 수 있다. (부산일보 2011년 2월 10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