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영원한 젊음의 계곡 빌카밤바

미키라티나 2011. 3. 3. 22:15

 

 

 

 

한순간 숨이 멈출 것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일찍이 독일학자 훔볼트는 “에콰도르 여행은 마치 적도에서 남극까지 여행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에콰도르는 적도가 지나가는 세상의 배꼽이자 작지만 극적인 지형과 다양한 기후를 가진 늘 푸른 나라다.

 

 

에콰도르는 비옥한 고산지대의 토양과 활화산이 자리한 안데스사면에서부터 독특하고 다양한 야생동식물들과 금을 비롯한 광물들이 풍부한 아마존열대우림까지 펼쳐져있다. 게다가 몇 개의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황금어장인 태평양연안과 해양 동물들의 낙원인 갈라파고스까지 어느 한 곳도 처지지 않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잉카후손들인 원주민들의 삶과 그들의 공예품, 동화처럼 예쁜 식민지 풍 도시 그리고 현대적인 대도시의 생활이 공존하는 에콰도르는 페루, 볼리비아와 더불어 남미에서 원주민전통을 이어가는 나라로 볼거리가 많고 물가가 저렴해서 어디에나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는 남미 최빈국 중의 하나다. 그 이유는 풍족한 자연을 탐내는 주변국들에게 영토의 반을 빼앗긴 데다 오랜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만성적인 경기침체로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순박하고 느긋한 여유와 후한인심을 느낄 수 있었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로 기억에 남아있다.

 

 

수도 키토에서 남쪽으로 690km의 길을 13시간 달려가면 다양하고 풍부한 종의 꽃과 나무들로 ‘에콰도르의 정원’이라 불리는 로하가 있다. 로하에서 다시 남쪽으로 빨강, 진분홍, 노랑, 자주 등 다양한 색의 부감벨리아가 예쁘게 피어 있는 길을 따라 1시간 더 들어가면 영원한 젊음의 계곡 빌카밤바가 나온다.

 

빌카밤바 계곡의 전경

 

 

잉카어로 ‘신성한 평원’이라는 뜻의 빌카밤바는 해발 1500m에 평균 기온 20도 정도의 온화한 기후를 가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조그만 마을은 145세의 세계 최고령을 기록한 장수촌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인류의 영원한 꿈인 장수에 관심이 많은 세계각국사람들이 어떻게 그처럼 오래 사는 것이 가능한 가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빌카밤바의 중앙광장. 그저 한가하다

 

 

하지만 내심 궁금함과 함께 큰 기대를 하고 찾아간 빌카밤바는 마치 우리나라 산골마을을 찾아온 것처럼 별다른 풍경도 없었다. 산골 특유의 조용하고 온화한 날씨에 깨끗한 물과 신선한 공기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평범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아주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접고 그저 친근한 마을사람들과 화창한봄 같은 날씨 그리고 아주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잠시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천천히 쉬었다 가면 좋을 그런 곳이었다.

 

 중앙광장의 라 고따 프리아, 차가운 눈물 이라는 유명한 노래 제목의 카페테리아

 

 

사실 빌카밤바에서의 장수는 전설이 아니었다. 마을광장에는 한가로이 잡담을 즐기는 노인들과 각국 여행객들이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린 듯 하는 정적 속에서 정물화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장수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했던 필자는 늘어지는 분위기를 과감히 떨쳐 버리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 빌카밤바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오르니 2, 3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미니 마을들이 있었다. 산호세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대문도 없는 집 마당에 햇볕을 쬐며 앉아계신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102세 할머니의 정정한 모습, 방문자를 몹시 반기셨다.

 

올해 102세라는 할머니는 비록 지팡이에 의지하고 계셨지만 매우 정정하셨다. 할아버지는 계신가 하고 여쭈었더니 6 개월 전 밭에서 일하시다 다리를 다쳐 방에 계신다하셨다. 막상 다친 107세의 할아버지를 뵈니 안쓰러울 정도로 쇠약하고 무기력해 보였지만 그 연세에도 밭일을 하셨다니 놀라웠다.

 

107세 할아버지도 쾌히 촬영하셨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기만한 그들의 긴 삶은 비록 가난하지만 신선한 공기와 맛있는 물 그리고 별 재해 없이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노동을 하고 그저 탈 없이 소박하게 살아온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날, 이곳에서 신비의 약수라고 소문난 특별한 물이 솟는다는 샘 ‘아구아 데 이에로(철분광천수)’를 찾아갔다. 산 속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서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농가마다 들어가 봤다. 하지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놀란 닭과 돼지가 숨을 곳을 찾느라 분주했다.

 

 

너무 적막해서 무서운 생각까지 들어 돌아갈까 하는 순간 계곡아래 펼쳐진 제법 넓은 들판에서 밭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니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봤다. 다행히 샘은 이곳에서 아주 가까이 있었다. 필자처럼 호기심 많은 외부인들로부터 몇 푼이나마 받기위해 자신들의 집에는 채우지도 않는 열쇠를 주었다.

 

 

약수도 마실 겸 산책삼아 나온 길이라 마침 가진 돈이 없어 사탕과 비스킷 봉지를 내밀었더니 손녀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좋아라하며 받아갔다. 평생의 노동으로 허리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구부정하게 서 계시지만 아직 검은머리에 건강해 보이는 할아버지께 연세를 여쭈었더니 ‘글쎄, 86세 정도?’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마을에서 80대는 아직 힘든 밭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나이로 노인도 아니라며 껄껄 웃으셨다.

 

밭에서 만난 농부 가족들

 

 

밭일하는 도구라고는 오직 손과 쇠스랑뿐 하루 종일 온 식구가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이 가난한 농부가족들의 모습에서 장수란 풍요로운 세계에서 편안하게 사는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열쇠를 받아들고 길도 없는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 가보니 주변과 샘물이 온통 붉은 색이다. 한 모금 마셔보았더니 찝찌름한 맛과 역겨운 냄새가 나는 철분 맛이 강한 약수였다. 어쩌면 이 물도 그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장수의 비결은 풀리지 않았다.

 

                                      신비의 약수 아구아데이에로

 

 

하지만 빌카밤바에 와보니 마을을 둘러 싼 자연환경을 포함하여 마을전체가 한 가족처럼 지내는 평화로운 분위기와 평생의 노동 그리고 욕심 부리지 않고 그날그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스트레스 없는 단순한 생활 등이 그 비결일 듯 했다.

(부산일보 2011.2.24 게재)

 

                        빌카밤바에서의 며칠은 꿈처럼 나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