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태평양의 파라다이스, 아카풀코의 절벽다이빙

미키라티나 2010. 7. 14. 15:13

 

아카풀코는 ‘갈대가 많이 자라는 곳’이란 뜻의 아스텍 어에서 유래한다. 멕시코시티에서  태양의 길이라 불리는 95번 고속도로를 타고 326km를 5시간정도 내려오면 태평양에 이른다. 태평양의 파라다이스라는 별명처럼 뛰어난 미항이자 휴양지다.

 

 

 

아름다운 해변과 더운 날씨로 늘 서늘한 고원도시 멕시코시민들이 주말에 즐겨 찾는 해변휴양지이기도 하다. 카리브 해의 칸쿤이  각광을 받기 전인 1940년대에는 미국과 멕시코 최고의 휴양지였다. 비록 칸쿤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 년 내내 32도에서 40도 사이로 늘 덥고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

어 언제라도 바다가 그리울 때 망설임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천혜의 해변이다.

 

 

 7km에 이르는 해안선에는 특급호텔과 식당들 그리고 태양과 바다와 모래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해변들이 둥그렇게 펼쳐진 해변을 따라 빼곡히 들어서 있다. 부산의 해운대와 광안리가 합쳐진 풍경이다. 뜨거운 낯에는 선탠과 수영을 즐기고 오후에는 쇼핑을 하고 밤에는 ‘Baby O’, ‘Palladium’, ‘Alebrije’, ‘Enigma’, ‘Zucca’, ‘Old bleu’ 등 요란하게 치장한 휘황찬란한 디스코텍에서 즐긴다. 아무래도 주말 밤에 가장 사람들이 많다. 문 열기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모두 성장을 하고 온다. 밤이 오면 번쩍번쩍 빛나는 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버스가 다니고 풍선을 가득 단 관광객용 마차가 다닌다.


멕시코의 톱가수인 루이스 미겔을 비롯하여 내놓으라 하는 스타들의 으리으리한 고급별장들이 즐비하다. 왕년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의 별장들도 있을 정도로 스타들의 사랑을 받는 휴양지다. 어렸을 때 TV에서 보았던 아아아~~~~아아아아~~. 타잔 시리즈도 이곳에 만들어진 정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다이빙선수 출신의 주인공 타잔이었던 조지 물러가 이곳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카풀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절벽다이빙이다. 아카풀코의 명물인 절벽 즉 라 께브라다는 아카풀코를 방문한 멕시코사람들은 물론이고 호화유람선을 타고 또는 관광으로 온 외국관광객들도 꼭 들리는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느 바닷가든 하나쯤 있을법한 평범한 절벽을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라 께브라다에서는 자칫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다이빙을 하기 때문이다. 뾰족하게 솟아 오른 날카로운 바위들로 가득하고 비스듬히 바다로 뻗어있는 이 35m 절벽은 수심이 겨우 4.5m, 넓이가 5m가 채 되지 않는 좁은 수로를 가지고 있다. 파도치면 최고 7m의 수심을 가지는 이 바위 위에서 다이버들은 목숨을 건 다이빙을 한다.

 

 

다이빙하다 입수하기 전에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칠 수도 있고 얕은 물속 바닥에 부딪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이버들은 파도가 들어와 수면이 높아지는 순간에 몸을 최대한 날려 바위에 부딪치지 않게 몸을 띄운 뒤 물속으로 입수한다.


 

 1930년대 전후 이 절벽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절벽을 놀이터 삼아 장난을 치고 놀다가 누군가의 제안에 의해 담력을 재는 위험한 놀이를 시작했다. 절벽 위에서 뛰어 내리기다. 1934년 지금은 고인이 된 리고베르또 아빡이 최초로 이 절벽다이빙을 시도했다. 절벽에는 높이마다 8m, 15m, 28m 그리고 최고 높이인 35m 포인트가 있다. 35미터에서 뛰어 내린 최초의 다이버는 리고베르또의 동생인 엔리께다.

 

 

절벽에서의 장난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 되었고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의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라 께브라다의 절벽다이빙은 아카풀코의 명물이 되었고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유명한 공연이 되었다. 그리고 절벽에서 모험을 시도하던 아카풀코의 다이버들은 세계 다이빙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다이버 협회를 만들고 아카풀코의 얼굴로 이 절벽과 다이빙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제는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한다. 매일 오후 1시에 한번 그리고 저녁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매 1시간마다 5명이 차례로 또는 둘, 셋이서 뛰어내린다. 때로는 아침 9시경에 유람선을 타고 들어온 외국관광객들을 위해서하는 특별 공연도 있다. 밤 공연에는 횃불을 들고 뛰어내리는 쇼도 보여준다. 해마다 12월 12일 멕시코 카톨릭의 수호 성모인 과달루뻬 성모의 날 밤에는 왕년의 원로부터 어린 다이버까지 수십 명이 다이빙을 하는 장관을 펼치기도 한다. 이날의 쇼는 물론 무료다.


다이버들의 묘기는 여러 가지인데 가장 어렵다는 비행기 자세는 절벽 가장자리에서 가장 멀리 뛰어서 두 팔을 한껏 펼치고 자유비행을 하듯 난 뒤에 머리로 입수한다. 이것에서 더 나아가 한 바퀴 돌고 머리로 들어가는 입수, 뒤로 날아 입수, 비행기자세로 날아 물 가까이서 한 바퀴 도는 고난도의 묘기까지. 35m에서 물속에 입수하기 까지 거의 3, 4초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에 이러한 묘기를 펼친다는 것은 그냥 평범한 다이빙대에서의 다이빙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묘기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다이버들이 성공적으로 입수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지금의 다이버들은 대부분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물론 30대 초반의 경력자들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번 또는 두 번 정도 세계 챔피언을 역임하기도 했다. 40대의 다이버들은 이제 노장이 되어 이 다이버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 역대 다이버들을 기리는 박물관이 라 께브라다에 붙어 있는 호텔 미라도르의 식당에 있다. 이곳을 방문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의 사인이 가득한 벽면과 사진들 그리고 다이버들의 사진들이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절벽에서 다이빙을 시도하다 다쳐서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도 라 께브라다의 젊은이들은 다이빙을 한다. 그저 그 희한한 묘기에 가슴 졸이며 보는 관광객의 시각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죽음의 스포츠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왜 다이빙을 하냐? 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그저 다이빙이 좋아서...그 뿐이다.    (부산일보 2010년 7월 8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