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고대 잉카의 숨결이 깃든 도시, 쿠스코, 페루

미키라티나 2011. 8. 23. 23:33

 

세상의 배꼽, 쿠스코

 

 

...1043년. 태양신의 아들인 망꼬 까빡과 딸인 마마 오끄요를 띠띠까까 호수의 태양의 섬에 내려 보낸다. 이들에게 황금 지팡이를 하나주며 이 지팡이가 박히는 땅에 정착하라고 계시를 내린다. 이 두 남매는 계시의 땅을 찾아 방황하다가 ‘세상의 배꼽’ 또는 ‘퓨마의 배꼽’을 의미하는 쿠스코에 황금 지팡이를 박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험준한 안데스를 방패삼아 계곡 속에 천혜의 요새처럼 들어앉은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비행기가 아닌 구불구불한 도로를 타고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우선 리마에서 남쪽으로 판암을 타고 12시간 동안 더위에 지쳐가며 ‘하얀 도시’ 아레끼빠에 도착한다. 그 다음 이번에는 산하나 넘으면 또 한 산이 다가오는 첩첩 산의 허리를 가르며 18시간의 긴 여로를 달려야 한다. 지면이 고르지 못해 덜커덩거리는 길을 추위에 떨어가며 진이 빠질 즈음 공기 밀도가 낮은 해발 3399m 고산에 위치한 쿠스코에 이른다.

 

             쿠스코 주변 마을의 하나인 친체로, 원주민 장으로 유명하다

 

 

 

                           친체로의 아이들, 자랐을거다

 

께추아어로 ‘세상의 배꼽 또는 중심’이라는 뜻의 쿠스코는 잉카 제국이 숭배하던 퓨마의 머리에 해당되는 위치에 있고 그 주변 마을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잠자는 퓨마 형상을 이루고 있다. 페루 관광의 백미인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서는 꼭 들러야 하지만 쿠스코 시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한 가지. 이미 아레끼빠를 거치며 고도에 적응하며 쿠스코에 도착하였다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비행기를 타고 쿠스코에 왔다면 문제가 다르다. 소로체(soroche) 즉 고산 증을 걱정해야 한다.

 

 

세 개의 문명이 깃든 거리

 

 

인구 30만의 쿠스코는 잉카 이전, 잉카, 식민지 그리고 현대의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진 우리의 경주와 같은 고도다. 황금의 요람으로 절대자를 위한 장소였던 쿠스코는 남미 고대유적지의 수도라 할 수 있다. 시가지는 걷는 느낌이 경쾌한 둥근 돌이 바닥에 깔린 좁다란 거리와 아래와 위의 형태가 판이하게 쌓여진 돌담들로 이루어져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도 세 개의 문명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건물에 세 가지의 건축양식을 금방 알아본다.

 

                   배낭자 숙소에서 내려다본 쿠스코 중앙광장

 

                                       고즈녁한 쿠스코의 야경

 

 

잉카 이전 시대에서는 커다란 돌을 자르지 않고 불규칙하게 배열하였던 것을 잉카 시대에 매우 규칙적인 배열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돌담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 위에 조잡하게 쌓아올린 돌 벽돌이 식민지 시대의 것이다. 즉 발코니가 있는 엷은 색의 커다란 식민지 풍 건물들은 잉카 석조물의 토대 위에 세워져 아래는 잉카 건축물이고 그 위에 식민지 시대 건물을 올린 것이다. 이처럼 쿠스코는 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예사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잉카와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로 가득하여 마치 500년 전에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하다.

 

                        마추픽추 기차 타러갈때 지나는 아치 문

 

 

우기라 하늘은 회색 구름만 가득했지만 붉은 지붕의 도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원래 쿠스코는 십자 형상의 4방향의 도시였다. 이를 따우안띤수유(Tahuantinsuyu)라고 불렀다. 오늘날 웅장한 대성당이 자리한 중심가인 중앙광장에는 무지개 색 쿠스코 시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중앙광장은 도시의 신경중추다. 대성당의 맞은편에는 잉카트레일과 아마존의 마누공원 그리고 뿌에르또 말도나도(Puerto Maldonado)로 들어가는 투어상품을 파는 여행사와 식당, 카페, 민예품점이 즐비하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언덕 위에는 시가지를 굽어보듯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하얀 예수 상이 보인다. 예수 상이 있는 이 언덕 위에 잉카 석재 기술의 걸작이라는 삭사이와망(Sacsaywaman) 유적지가 있다.

 

 

태양이 흘리는 눈물, 황금 도시

 

 

대성당은 1560년 잉카의 비라꼬차 신전을 허물고 세운 것으로 무려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공들여 1654년에 완성되었다. 육중한 외관이지만 내부는 섬세하게 장식된 은세공으로 만든 제단과 화가 반 다이크(Van Dyck)와 쿠스코파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원주민 피부색인 검은 예수 상이 있다. 성당 앞에는 검고 긴 머리채를 색색의 끈을 엮어 한 갈래 또는 두 갈래로 쫑쫑 땋아 내리고 머리쓰개를 하거나 작은 모자를 쓰고 때에 절어 있는 원색의 전통 의상으로 성장한 원주민 여인네들이 아이를 업거나 알빠까를 끌고 나와 우나 포또! 운 솔!(Una Fot!, Un Sol. 사진 한 장 1솔)을 외치며 관광객을 잡는다. 사진 모델이 되어 주고 푼돈을 받는 것이다.

 

 

 쿠스코의 상징 깃발인 무지개 깃발이 걸린 대성당 앞. 무슨 날인지는 기억이 없지만 이날 광장에선 음악과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쿠스코 중앙광광에 위치한 대성당

 

광장 남쪽의 라 꼼빠니아(La Compañia) 성당은 1571년 예수회 파가 세운 것으로

1650년 완성되었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나무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고 바로크 양식의 열주가 아름답다. 성당 옆으로 난 좁은 골목길은 반듯하게 잘라 반질반질하게 다듬은 일정한 모양의 돌들을 모르타르를 쓰지 않고도 정교하게 쌓아올린 잉카 벽으로 유명한 로레또(Loreto) 거리다. 이 벽들은 잉카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돌 벽은 정말 면도날 하나, 종이 한 장 들어갈 한 치의 틈도 없이 꽉 물려 있다. 로레또 길을 지나 아레끼빠 거리로 들어서면 산따 까딸리나 수녀원(Convento de Santa Catalina)가 있다. 이는 태양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잉카의 ‘태양의 처녀들의 집’을 허물고 지은 것이다.

 

                        잉카 석벽으로 유명한 로레또 거리

 

 

                 틈새하나 없이 꽉 물린 잉카 석벽. 종잇장도 안들어 간다.

 

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잉카의 벽은 종교예술박물관을 끼고 있는 아뚠루미욕(Hatunrumiyoc) 골목길이다. 이 벽은 마치 조각그림 맞추기처럼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돌들이 다양한 각도로 연결되어 1mm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물려 있다. 얇은 종잇장조차 들어가지 않는 다각형의 돌 블록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지름 115m인 하나의 바위를 12각으로 다듬어 물린 유명한 ‘12각 돌’이다. 잉카의 달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12각은 각각의 달을 가리킨다. 이 골목을 지나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삼나무로 만든 아름답고 세밀하게 조각된 설교단이 유명한 ‘산 블라스(San Blas) 성당’이 나온다.

 

                아룬뚜미욕 거리로 가는 골목의 잉카 석벽

 

유명한 12각으로 물린 돌벽. 마추픽추에서는 36각 돌이 있다. 그 이야기는 마추픽추에서 다룰 것이다.

 

 

남쪽으로 주도로인 아베니다 솔(Avenida Sol)을 따라 내려가면 식민지시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산또 도밍고(Santo Domingo) 성당이 있다. 그러나 이 성당은 원래 잉카의 태양신전인 꼬리깐차(Coricancha)를 허물고 그 위에 지은 건물이다. 아직도 검은 색 바위들을 마치 두부 모처럼 반듯반듯하게 잘라 반들반들하게 잘 다듬어 쌓아올린 잉카의 훌륭한 토대와 단단한 벽의 일부가 남아 있는 이 성당은 1650년과 1950년 두 번의 큰 지진으로 스페인이 지은 성당 건물은 크게 파괴되었지만 잉카의 신전은 멀쩡하게 견뎌내었다. 이는 잉카 건축술의 특수한 설계와 요철모양으로 다듬어 연결시킨 다각형의 돌 블록 짜 맞추기로 서로 견고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500년도 더 이전에 철로 만든 도구를 쓸 줄 몰랐던 당시에 이처럼 대 지진에도 끄떡없는 견고한 석조건물을 만든 잉카의 건축술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위풍당당한 코리칸차의 위용. 맨 아래는 잉카 석벽 그 위는 성당 건물 

 

 

 

                   아베니다 솔(태양 대로)에서 본 코리칸차

 

 

잉카 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꼬리깐차의 문과 지붕에는 1장에 2 kg 이 나가는 700장 이상의 순금으로 덮여 있었고, 순금으로 만든 옥수수가 심어진 사각형의 안뜰 중앙에지금도 남아있는 팔각형 회색 주춧돌에도 55 kg 순금을 씌웠다고 한다. 스페인 군이 침략할 당시 신전전체가 태양처럼 눈부신 황금빛으로 위용을 뿜어내듯 번쩍였다고 한다. 그 찬란한 광경을 목격한 스페인군들이 ‘태양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불렀다는 황금도시 쿠스코.

 

                               코리칸차는 이제 성당이다.

 

 

잉카는 태양과 달, 금성, 별들, 그리고 천둥과 번개를 숭배하였다. 그 중의 가장 위대한 신 태양을 위한 성소로서 최고의 예술로 표현한 것이 바로 꼬리깐차 신전이다. 일부 복원된 신전내부를 들어가니 서늘한 공기를 머금고 있어 시원하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의 벽은 단단한 화강암을 잘라 다듬어서 깨끗하게 연마한 돌 블록들로 정확하게 맞물려 있고 활처럼 굽은 아치도 있어 전체적으로 기품있고 우아하다. 현대에 세워진 어느 멋진 빌딩 못지않게 세련되고 훌륭한 건축미를 보인다. 이 모든 것을 철기를 쓰지 않고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잉카의 건물벽이 견고하게 남아있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면 최근 몇 년간 쿠스코인들이 벌이고 있는 뿌리 찾기 사업의 하나로 세운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동상 탑이 있다. 동상은 쿠스코의 실제 건설자이자 정복왕인 9대 잉카인 빠차쿠떽(Pachakutec)왕이다. 33m 높이의 탑 내부에 있는 달팽이집 같은 계단을 오르면 12m의 빠차쿠떽 동상이 서 있는 전망대로 나온다. 거칠게 부는 바람사이로 쿠스코를 둘러싼 갈색의 민둥산에는 산을 도화지 삼아 커다랗게 그려놓은 페루국기의 문장과 ‘페루여 영원 하라’는 글씨가 보인다. 산을 대형 광고판처럼 이용하는 기발한 발상은 나스까의 전통일까. 바람과 추위에 지치면 내려와 탑 내부에 있는 자그마한 까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삭사이와망과 인띠 라미 축제 

 

 

한편, 하얀 예수 상이 서 있는 언덕 위에 잉카의 유적지들이 있어 반나절 투어로 둘러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제대로 감상할 수 없으므로 체력만 된다면 광장에서 북쪽 언덕으로 난 샛길로 걸어 올라가는 것도 괜찮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땀보마챠(Tambomacha)는 잉카의 숙소로 돌로 만든 목욕탕, 폭포, 회랑 그리고 계단식경작지가 있다. 그 건너편에는 퇴색하여 분홍빛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낮은 담의 뿌까뿌까라(Pucapucara)가 있다. 이곳은 제국을 지키는 여러 신들에게 봉헌된 신성한 장소다. 유적지 입구마다 초라한 옷을 걸친 원주민 여인네들이 야마를 끌고 와 ‘우나 포또’를 외치거나 민예품을 팔고 있다.

 

 

그 다음은 껜꼬(Qenco)라 부르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산 유적지다. 동굴이나 군데군데 틈이 생긴 암벽에 둘러싸인 곳으로 반원형의 멋진 돌 벽과 돌로 만든 큰 의자 그리고 6m 가 넘는 돌기둥이 서있다. 그리고 삐죽삐죽한 바위표면에 구멍 뚫린 누에고치처럼 이리저리 여러 개의 통로가 있는 커다란 바위산인 ‘제물 바위’가 있다. 통로로 들어가면 마치 미로처럼 길이 헷갈린다. 제물 바위 위에 올라보면 표면에 1m정도 길이의 뱀처럼 지그재그로 홈을 파서 만든 작은 수로가 이채롭다. 발 아래로 중앙광장을 기점으로 사방으로 뻗은 도로들과 식민지시대의 종교건물들, 붉은 지붕들의 집들 그리고 잉카의 건물들이 섞여 있는 쿠스코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온통 붉은 기와 지붕일색인 쿠스코 전경

 

 

마지막으로 들리는 곳이 실제로 보지 않고는 그 규모의 거대함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잉카 성벽 ‘삭사이와망’이다. 고대남미의 건축물 중에서 가장 크다는 삭사이와망은 15세기 후반에 빠차꾸떽이 건설하고 또빡 유빵뀌(Topac Upanqui) 대에 완성되었다. 제 10대 또빡 유빵뀌는 그리스의 알렉산더나 몽고의 칭기즈칸 또는 광개토대왕처럼 정복과 회유로 영토를 확장하여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다. 그는 쿠스코를 재정비하여 좁지만 훌륭한 도로와 유럽처럼 중심부에 대 광장을 세우고 여문 암석으로 건물을 짓는다. 그리고 그 위에 햇살에 태양처럼 번쩍이는 금박으로 칠한 신전과 주요 건물들을 세워 화려한 태양의 도시를 건설한다. 쿠스코는 스페인에 정복되기 직전에는 인구 약 2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였다.

 

 

                                     삭사이와망의 위용

 

 

잉카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주어지는 사회보장제도로 풍요가 넘치는 제국을 만들었다. 멕시코의 아스텍제국이 중앙고원에 정착할 무렵 잉카는 로마제국에 견줄만한 광대한 영지를 가진 대제국이 되었다. 최전성기에는 북으로 콜롬비아 북부와 에콰도르, 페루 전역 그리고 남으로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일부 그리고 쿠스코에서 2700km 떨어진 칠레 마울레 강까지 남북 약 4000km에 걸쳐 면적 약 100km 평방에 이르는 대제국이었다. 도로의 길이만 해도 약 3만 km에 이르는 잉카의 영토가 확장 일로에 있을 당시 스페인침략자가 들어와 어이없이 무너져 버리게 된 것이다.

 

 

3층 계단 형으로 쌓인 거대한 성벽은 높이 약 18m, 길이 총 500m 이상으로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날카로운 톱날처럼 보인다. 66개의 지그재그로 돌출된 성벽은 최고 높이 8.53m에서 무게는 100톤에서 361톤까지 소형 자동차 500대의 무게를 가진 거대한 바위들로서 줄을 지어 층을 이루며 다양한 각도로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고도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늘어선 성벽들

 

 

 

마치 사람의 것이 아닌 거인의 계단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성벽을 이루는 바위들은 이곳에서 10km나 떨어진 채석장에서 운반해온 것이다. 안데스화강암, 반암, 석회암 등의 야물고 단단한 바위들을 쇠나 강철, 수레바퀴나 마차도 없이 채석에서 운반까지 순수하게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이루어졌다. 스페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중남미 문명에서는 철기, 바퀴를 쓸 줄 몰랐다. 커다란 바위덩어리에 쐐기를 박아 물로 수축시키고 불로 팽창시켜 절단한 뒤 돌과 돌 사이에 모래를 넣어 연마하고 다듬어서 험한 안데스산길을 지나 이곳까지 운반한 것이다. 그리고 복잡하고 불규칙적이지만 지진에 끄떡없도록 쌓아 올렸다. 이처럼 견고한 보루와 성채를 만든 후 그 위에 탑, 창고, 건물 등이 있는 원형의 조그만 광장을 만들었다. 이 거창한 공사는 90여 년 동안 약 3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은회색의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차갑고 음울한 바람 속에 검푸른 바위와 푸른 이끼가 어우러져 있는 장대한 모습에 가슴이 시리다. 500년 전에 잉카와 스페인 군의 치열한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져 많은 잉카 인들이 죽고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그때부터 삭사이와망 즉, ‘매의 둥지’라고 불리게 되었다니. 백병전에 익숙한 잉카의 군사들이 천하무적 같은 화승총 앞에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장렬히 전사하는 환영이 보이는 듯하다. 수로와 저수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꼭대기의 광장에 오르니 쿠스코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 전체가 붉은빛이다. 바로 왼쪽 언덕에 두 팔을 벌리고 시가지를 굽어보는 하얀 예수 상이 서있다.

 

 

                   산허리에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가 보인다.

 

 

삭사이와망은 현재 잉카 제국의 상징적인 장소로 해마다 6월 24일 동짓날에 ‘인띠 라미(Inti Raymi)’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원래 이 축제는 쿠스코의 중앙광장 자리에서 죽은 조상을 숭배하는 잉카 인들이 역대 왕의 미라들을 모시고 참가하던 종교의식이다.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를 이단으로 여긴 스페인침략자들은 왕의 미라들을 리마에 보내 지하묘지에 안장시키고 이 축제를 금지시켜버렸다. 이후 500년의 세월이 지난 1944년에 다시 부활하였다. 축제는 태양신을 위한 상징적인 희생의식과 뿔피리, 께냐, 나팔 등을 앞세운 행렬과 춤판이 펼쳐진다. 해마다 약 10만 명의 관중이 이 축제를 지켜보는데 이 숫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단 하루의 축제에 몰려드는 관광객으로는 최고로 많은 것이다. 

 

 

     여전히 살아있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는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는 세계문화유산으로 건물증개축이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만정부와 시민들 스스로 뿌리 찾기 프로젝트로 역사보존에 힘쓰고 있다. 덕분에 이처럼 시간이 멈춘 듯 옛 도시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반면 외곽으로는 늘어나는 관광객 등에 따른 수요를 위한 발전으로 규모가 커지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만나는 쿠스코 시민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잉카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문명은 사라졌지만 그 자취와 자부심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쿠스코는 타임머신을 타고 찾아가는 전설의 도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잉카의 수도로 만날 수 있었다. 오늘날 쿠스코는 보존과 발전이라는 상이한 두 과제를 조화롭게 풀어가는 본보기로 거듭나고 있다.

 

길을 걸으며 야마털뭉치에서 실을 잣는 아낙네

 

마을 공동으로  전통 염색과 직물로 소득을 올린다

 

 

 

 

 

해맑은 아이들. 그들에게서 미래가 보인다.

 

 

 

 

안데스에 방목된 야마와 알파카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