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후보, 마야 치첸잇짜의 춘분

미키라티나 2007. 3. 22. 14:23

유까딴의 석회암 대지 위, 찌는 듯한 무더위와 정글사이에 우뚝 솟은 경이로운 도시 치첸잇짜가 있다. 치첸잇짜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고대도시 중의 하나다.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 위에 메리다에서는 동쪽으로 119km, 깐꾼에서 서쪽으로 201km 거리에 있다.

 

서기 75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번성한 종교중심지였던 치첸잇짜는 198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인류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매년 전세계에서 약12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마야가 남긴 도시들 중에서 가장 복원이 잘된 곳으로 세계적인 휴양지 깐꾼을 방문하면 꼭 들리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2006년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후보로 선정되어 올 7월 발표를 앞두고 있다.

 

   엘 까스띠요 신전에 올라 내려다본 공경기장


 

   치첸잇짜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농사정착지로 시작하여 5세기부터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러다가 7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오늘날 옛 치첸으로 알려진 도시를 건설한다. 고전기마야의 퇴화기에 옛 치첸은 버려진 것이 아니라 10세기 초에 다른 문명과 혼합되었다. 즉 918년 중앙고원에서 내려온 똘떼까 부족의 침략으로 혼합된 문화를 가진 잇짜 족들이 980년 이곳에 도착하여 치첸잇짜로 거듭나게 되었다.


   중앙고원의 ‘뚤라’에서 께찰꼬아뜰(깃털 뱀 신)에 의해 인도된 똘떼까 출신의 부족들이 들어온 것이다. 호전적인 똘떼까 부족은 인신공양을 했다. 이때 치첸잇짜의 주 신전인 엘 까스띠요(성채)가 세워졌다. 1185년 주변에 있던 전통 마야족의 도시였던 욱스말과 마야빤 그리고 치첸잇짜 사이에 내전이 있었다. 옛 치첸의 마야부족은 치첸잇짜를 버리고 오늘날 과테말라의 영토인 뻬뗀으로 이동하였다. 치첸잇짜는 마야어로 ‘물의 마술사들의 연못가의 도시’라는 뜻이다.

 

   치첸잇짜 전경...오른쪽 피라미드는 엘 까스띠요...멀리 전사의 신전


 

   오늘날 치첸잇짜 유적지는 3km 길이에 1.5km 폭으로 남아있다. 각 건물군은 종교의식을 위한 광장을 끼고 있으며 계획적으로 건축되었다. 주 신전인 엘 가스띠요를 기준으로 남쪽은 푹 양식(마야의 바로크라 불리는 레이스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조각이 돋보이는 건물양식)의 옛 치첸 건물들이 있다. 엘 까스띠요 근처는 똘떼까 부족의 영향을 받아 장식이 배제된 딱딱하고 중후한 건물들의 새 치첸이다. 하지만 똘떼까 양식의 특징은 건물 하나하나가 정밀한 수학적 계산 하에 정확한 모양새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초대형 해시계, 엘 까스띠요 신전


유적지 입구를 들어서 조금만 걸어가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다. 정사각뿔의 꼭대기를 잘라낸 모습에 동서남북으로 계단이 나있는 엘 까스띠요라 불리는 신전이다. 엘 까스띠요는 똘떼까의 침략 이전인 800년경 지어졌던 고전기마야 신전을 똘떼까의 양식으로 다시 겹쳐서 지은 두 겹의 피라미드로 두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엘 까스띠요의 깃털뱀 신 쿠쿨칸(께찰꼬아뜰)


 

정상에 마야의 쿠쿨깐(깃털 뱀 신) 즉 똘떼까의 께찰꼬아뜰 신전이 있는 피라미드는 건물자체가 정확한 천문학을 이용한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태양력이자 해시계다. 즉 계단식 피라미드 외벽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캘린더 조형물인 셈이다.

 

한 변이 55m인 정사각형의 기단과 25m 높이로 쌓아 올려진 계단과 테라스의 돌 하나하나가 모두 1년 365일을 나타낸다. 동서남북으로 난 네 면에 있는 9층의 테라스는 마야의 아홉 하늘을 상징한다. 그리고 테라스는 중앙의 계단에 의해 양분되어 18층이 되며 이는 20일이 한 달인 마야력의 18개월을 상징한다.

 

   엘 까스띠요 신전 모형

 

그리고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난 계단은 각각 91층으로 모두 364개이며 거기다 정상의 계단을 합하면 365개가 된다. 이는 마야의 18개월과 20일에 불길한 남은 5일을 더한 것으로 1년을 나타낸다. 그리고 네 면의 각 방향으로 난 52개의 납작한 석판은 52를 신성한 숫자로 여겼던 마야력과 똘떼까의 1세기인 52년을 상징한다. 


따라서 엘 까스띠요는 고도로 발달된 수학을 이용하여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것 외에도 마야천문학과 역법을 보여주는 태양력신전이다.

 

    엘 까스띠요 신전 아래 있는 깃털뱀 신 쿠쿨칸의 머리

 

산사람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던 세노떼로 향하는 서쪽 계단 바닥에 두개의 커다란 뱀 머리 조각이 있다. 이는 중앙고원의 문화를 가지고 내려온 똘떼까의 께찰꼬아뜰(마야의 쿠쿨칸)로 신전 정상에는 방울뱀의 꼬리가 두 개의 기둥으로 그리고 중앙계단을 타고 내려와 바닥에 벌린 입에서 긴 혀가 나온 뱀 머리로 연결되어 있다.

 

신전 위의 뱀 꼬리와 신전 바닥의 뱀 머리. 이 둘은 해마다 두 번 완벽한 한 마리의 거대한 뱀이 된다. 매년 춘분과 추분 오후에 태양의 위치에 따라 북쪽 계단 옆의 일련의 삼각 변을 따라 빛과 그림자가 생긴다. 태양빛의 그림자로 생긴 구불구불한 몸통은 신전 위의 꼬리에서부터 바닥의 커다란 머리까지 연결되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피라미드의 계단을 타고 땅으로 기어내려 오는 듯한 환영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깃털 뱀 신 쿠쿨칸이 빛과 그림자의 조화로 춤을 추듯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신전을 하강하는 형상이다.

  

    춘분과 추분에 볼 수 있는 엘 까스띠요 계단에 그림자로 형성된 깃털뱀 신 쿠쿨칸의 하강. 

 

    쿠쿨칸의 하강...구불구불한 그림자는 뱀 신의 몸.

 

오후 4시 반 정도에서 시작하여 약 45분 정도 이어지는 태양의 그림자 쇼는 시간이 갈수록 9개의 둥근 그림자가 더 뚜렷해지며 구불구불한 뱀이 된다.


지난 2000년, 새 천년 3월 21일 춘분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만 명의 사람들 눈앞에서 마야의 태양이 만든 ‘빛과 그림자 쇼’가 펼쳐졌다.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한 구경꾼들 사이에서 필자도 천년 전에도 똑같이 빛났었을 마야의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뻗고 그 에너지를 듬뿍 받았다.

 

    2000년 새 천년의 춘분, 치첸잇짜에 모인 전세계 사람들. 쿠쿨칸의 하강이

시작되고 있다.

 

   쿠쿨칸의 하강

    손을 뻗어 태양에너지를 받는다

 

 

매년마다 3월 21일 하루 전날(20일)과 뒷날(22일) 그리고 9월 22일 이틀 전(20일, 21일)에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미 천년 전에 태양광선으로 그림자 쇼를 연출할 만큼 마야인 들의 뛰어난 상상력과 수학능력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처럼 마야건축가는 건물에 시계와 태양력의 개념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신전을 오르다

  

아찔하게 올려다 보이는 45도의 가파른 계단에 늘어뜨려진 굵은 쇠사슬을 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애쓰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기다시피 올라간다. 손바닥에 땀이 밸 지경이다. 

 

   엘 까스띠요 신전...서쪽 계단.

 

   경사가 급해 신전으로 올라가는데 아찔하다.

 

겨우 정상에 서서 사방을 보니 우와! 멋지다가 절로 나온다. 정상에는 뱀 머리가 아래로 그 위에 방울뱀 꼬리 모양을 한 기둥 두개가 받치고 있는 신전의 작은 방들이 있다. 방들은 각 면마다 똘떼까 전사들이 얕은 부조로 새겨진 둥근 기둥과 벽으로 이루어졌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끝 간 데 없이 초록밀림의 수평선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키 큰 정글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 피라미드의 회색꼭대기들이 간간이 보일 뿐 그 너머는 산은커녕 언덕 하나도 보이지 않는 탁 트인 전망이다. 경비행기 한 대가 유적지 위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신전 위에서 내려다 본 주변 전경


 

신전 벽을 따라 왼쪽으로 한바퀴 돌아본다. 눈 아래 펼쳐진 넓은 마당 오른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줄맞춰 서있는 기둥들만 남아있는 천개의 기둥들전사의 신전이 내려다보인다. 늘어선 기둥들이 병사들의 사열을 보는 것 같다.

 

   엘 까스띠요에서 내려다 본 전사의 신전

 

전사의 신전부터 왼쪽으로 금성의 제단, 재규어와 독수리 제단, 촘빤띨(해골신전) 그리고 공경기장재규어신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금성의 제단 뒤쪽으로 세노떼 사그라도(신성한 연못)로 빠지는 오솔길이 보인다. 이 건물들은 모두 잔혹하게 표현된 똘떼까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신전 속 신전


발을 헛디딜까 하는 두려움에 계단 가운데 쳐진 굵은 쇠사슬 줄을 잡고 엉금엉금 다시 피라미드를 내려오니 마침 하루 두 시간씩만 공개하는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줄이 서 있었다. 엘 까스띠요는 신전 위에 신전이 겹쳐진 구조다. 한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신전 내부는 앞사람의 형체만 겨우 보일 정도로 어두컴컴하다. 후덥지근하고 답답한 공기로 숨이 막힐 것만 같다.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니 겨우 한사람씩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경사가 급한 오르막 계단이 있다.

 

    올라가는 것 만큼 내려가는 것도 일이다.

 

  계단 아래 깃털뱀 신 쿠쿨칸의 거대한 머리


계단이 끝나는 곳은 옛 신전의 중심부로 철책이 쳐진 막다른 작은 방이 하나 있다. 그 안에 앉은 듯 누운 듯 비스듬히 불안한 자세로 인신공양으로 바쳐진 제물의 심장을 담는 접시를 안고 있는 착-몰이 세월의 이끼를 덮어쓴 채 하얀 조개껍질과 옥을 박아 넣은 눈을 부릅뜨고 있다.


바로 뒤에는 우리나라 민화에서 나온 듯한 호랑이처럼 붉은 칠을 한 몸에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색 비취가 점점이 박힌 재규어 옥좌가 놓여 있다. 재규어 옥좌는 이집트 투탕카멘의 것과 비슷하다. 어디선가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는 이 성소의 두 조각상들은 몇 세기를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어두움에 익숙해진 눈으로 환한 바깥으로 나오자 햇살에 눈이 부시다. 


   마야의 첨성대, 엘 까라꼴


엘 까스띠요를 나와 동쪽(왼쪽)으로 빠지면 한적한 오솔길이 있다. 오솔길을 따라가면 작은 신전들이 산재해있다. 납골당은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뱀 머리조각이 바닥에 놓여있다. 신전들은 푹 양식으로 알려진 비의 신 차-악의 얼굴이 가득한 탑이나 똘떼까 양식인 혀를 쑥 빼물고 있는 깃털 뱀 머리조각이 섞여있었다.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커다란 뱀 머리조각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곳을 지나 더 내려가면 붉은 집이 있다. 이 건물은 내부에 붉은 색으로 칠해진 방이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차-악의 형상을 가진 푹 양식이다. 그 뒤의 사슴 집은 사슴이 그려진 벽이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차례로 건물들을 보면서 계속 가다보면 둥근 돔 지붕을 가진 독특한 건물이 있는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엘 까라꼴(달팽이)이다. 

 

    엘 까라꼴...둥근 돔 지붕이 천체관측소

 

   사방으로 네 개의 창문이 있다. 신관들은 창문을 통해 육안으로 별을 관측했다.

 

엘 까라꼴은 치첸잇짜에서 아주 매력적인 건물의 하나로 생김새가 마치 요즘의 천문대처럼 원통형 건물에 둥근 돔 지붕을 이고 있다. 두 개의 단 위에 세워진 둥근 지붕의 건물 내부에 마치 달팽이처럼 휘돌아 올라가는 나선형의 계단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사실 생김새로 짐작할 수 있듯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에 세워진 마야의 첨성대 즉 천문대다. 마야신관들은 1년 중 3/1 이상이 흐린 날씨로 관측이 여의치 않은 이곳에서 돔 지붕 아래 차-악의 얼굴이 조각된 사방으로 난 네 개의 작은 창문을 통하여 태양과 금성과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였다. 그들은 육안만으로도 정확한 날짜를 산출하여 춘, 추분과 같은 절기와 종교의식과 옥수수 씨뿌리기나 추수 같은 특별한 날들을 정했던 것이다.


   푹 양식의 보석, 라 이글레시아

   

엘 까라꼴을 지나 길 끝에 이르면 외벽 꼭대기까지 섬세한 장식으로 뒤덮인 건물 하나가 눈길을 확 잡아당긴다. 화려한 외부 치장이 마치 바로크양식의 성당처럼 보여 라 이글레시아(성당)로 불리는 건물이다. 세 단으로 이루어진 긴 몸체에 단 하나의 방이 있는 독특한 형식의 라 이글레시아는 푹 양식의 보석이라 할 만큼 눈부시게 아름답다. 푹 양식은 마야건축미의 극치를 이루는 욱스말 유적지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라 이글레시아 건물...중간 층에 코끼리 코를 한 비의 신 차-악의 얼굴이 있다. 전형적인 푹 양식

 

 

벽 윗부분에 장식으로 두른 돌출부에는 뱀이 구불거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사방 벽 옆구리에는 차-악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새겨져있다. 가면의 코 부분 위에는 부서진데 없이 완벽한 사람형상이 앉아 있다. 각 구획 경계선에는 세상의 경계선을 긋는 듯 천체를 짊어진 네 개의 형상이 있다. 부조로 표현된 커다란 뇌문무늬의 아치지붕은 건물을 훌륭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방에 들어가면 높이 올라간 전형적인 마야아치를 볼 수 있다.

 

   마야 아치. 건물 내부의 방은 대부분 마야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라 이글레시아와 수도원 사이...구부러진 코를 가진 차-악 신...코는 번개를 상징한다.

 

 

성당 바로 오른쪽에는 수녀원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통로가 좁아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정도다. 그 사이 벽 지붕에는 차-악의 가면이 있다. 통로를 돌아가면 조그마한 광장과 높이 20m에 폭 30m, 길이 60m의 직사각형 건물이 있다. 외벽에 일련의 십자가무늬로 벽면을 가득채운 순수한 푹 양식의 왕궁이다. 많은 직각형 방들 사이는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수도원의 건물. 입구가 커다란 뱀의 입이다.

 

  비의 신 차-악의 옆 모습...푹 양식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형상이다.


 

수녀원은 건물 안 많은 방들이 마치 수녀원과 비슷하다고 스페인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2층으로 된 건물에는 푹 양식의 돌 모자이크와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벽은 정사각형이 연속으로 이어져 마치 그물처럼 표현되어 있다. 커다란 차-악 신이 입을 딱 벌린 것처럼 만들어진 방 입구 위에는 깃털을 따라 신 또는 왕이 새겨져 있다. 돌아 나오면 형편없이 허물어져 마치 언덕처럼 보이는 다 부서진 건물이 있다. 이는 탐험가들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드러난 다른 형태의 계단들과 통로다. 화려한 성당과 수녀원을 끝으로 왔던 오솔길을 따라 엘 까스띠요의 마당으로 되돌아간다.  

 


   천개의 기둥들과 사우나 떼마스깔


엘 까스띠요의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면 기둥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는 천개의 기둥들이 나온다. 이는 똘떼까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확실한 건축양식으로 뚤라 유적지와 똑같다. 기둥들은 나무나 야자 잎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지붕들을 받치던 것이다.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 기둥들 사이로 전사의 신전 쪽으로 빠져 더 들어가면 또 다른 기둥들이 있다.

 

 마야에도 이렇게 십자 형상이 있다(앞 칼럼 멕시코 마야문명 참고)


 

조각기둥 궁전에서는 더 선명한 부조기둥들을 확인할 수 있다. 돌 의자 또는 바닥에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차-악 얼굴도 있다. 더 가면 증기탕이 나온다. 이곳은 조그만 입구로 몸을 최대한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 앉아 뜨겁게 데워진 돌에 잎사귀 달린 나뭇가지로 물을 뿌려 나오는 증기로 목욕을 하던 일종의 사우나다.

 

떼마스깔이라 부르는 이 고대사우나는 현재 과테말라 고산마을에 집집마다 하나씩 있다. 이는 중미에서 가장 오래된 고산마야의 풍습이다. 증기탕은 인신공양으로 바쳐질 사람제물이 의식을 행하기 전 몸을 정화하거나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중앙고원에서 내려온 호전적인 똘떼까에게 정복되기 이전의 마야 즉 고전기마야 시대까지는 마야문명에서 신에게 산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잔인한 인신공양은 없었다. 심장을 바치는 의식은 아스떼까의 전신이 되는 똘떼까 문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다만 마야에서는 주로 왕과 왕비 등 지도자 계급이 스스로 몸에서 피를 내어 신에게 제를 올리는 희생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치첸잇짜는 똘떼까의 영향을 받아 신전도 똑같지만 제물의 심장을 놓는 착-몰 상과 해골제단인 쫌빤뜰, 심장을 삼키는 독수리와 재규어 등 무시무시한 인신공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둥 사이의 단에 새겨진 부조. 재규어와 신의 모습이다.

 

여기서 계속 나가면 크고 넓은 저자거리인 시장터가 있다. 이 유적지에서 가장 높은 25개의 날씬한 기둥들이 쭉쭉 뻗어 있는 이곳은 번잡한 관광지의 소음은 사라지고 적막감만 감돈다. 이름모를 열대새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잔혹한 예술, 전사의 신전


북쪽에 위치한 전사의 신전 앞에는 회색이끼를 가득 뒤집어 쓴 기둥들이 서열하고 있다. 200개가 넘는 기둥들은 모두 얕은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네모난 돌들을 쌓아 올린 기둥에는 새 깃털과 장신구로 화려하게 치장한 전사와 동물의 얕은 부조가 가득 새겨져 있다. 기둥들이 이고 있었던 둥근 지붕에는 커다란 뱀 형상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오래 전에 모두 사라지고 없다. 계단 아래 바닥에 놓여진 깃털 뱀 머리조각은 마치 두개의 기수처럼 신전 위에 기둥으로 서 있는 꼬리부터 이어지고 있다.

 

    전사의 신전과 천개의 기둥들

 

   전사의 신전 기둥들에는 전사의 부조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세 단의 신전 위에는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2.4m의 큰 인물상이 매우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얼굴은 죽음을 의미하는 서쪽으로 향한 채 빈 접시를 안고 있다. 똘떼까의 뚤라에서 시작된 제물의 심장을 바치던 착-몰 상이다. 누워있는 자세로 등과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발꿈치를 궁둥이로 끌어 붙였으며 팔과 손을 장딴지 옆에 붙이고 머리를 들어 오른쪽에 있는 엘 까스띠요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전사의 신전 위...착-몰과 깃털뱀 꼬리 기둥....안타깝게도 바닥의 부조 보호를 위하여 출입금지.

 

착-몰 뒤로 지붕을 받치던 기둥들과 아가리를 벌린 두 마리의 깃털 뱀 머리가 있다. 바닥엔 전사들과 사제들 부조가 새겨져 있다. 현재 이 신전 바닥의 부조를 보호하기 위해 신전 계단에 오를 수 없도록 철책이 쳐져 있다.

   

     전사의 모습이 새겨진 기둥

   전사의 신전 기둥

 

전사의 신전은 뚤라에 있는 신전 B와 아주 닮은꼴이다. 뚤라에서 본 것처럼 전사로 표현되는 독수리와 재규어가 인간의 심장을 게걸스레 삼키는 부조가 있다. 이는 호전적인 똘떼까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기둥에 조각된 전사와 착-몰은 똘떼까의 영향을 받은 결정적인 증거다. 후고전기 마야에서는 자비로운 신들의 자리에 호전적인 똘떼까의 수호신이자 산사람의 피를 원하는 전쟁과 암흑의 신 떼스까뜰리뽀까가 대신 들어서 무서운 예술세계가 펼쳐진다.

 

    전사의 기둥 

    전사의 기둥

 

신전 왼쪽으로는 1926년 발굴된 착-몰 신전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신전이 끝나는 지점부터 빙 둘러서 원통형으로 다듬은 돌들을 쌓아 올린 기둥들이 계속 이어진다. 전사의 신전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배를 타고 건너온 똘떼까 부족들의 항해와 노랑머리 적들과의 전쟁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계속 걸어서 엘 까스띠요와 세노떼 사이로 간다.


세노떼로 들어가는 길인 삭베(마야의 신성한 길, 하얀 길) 입구에 4m 높이의 작은 제단이 있다. 금성의 제단은 중요한 의식을 위한 것으로 벽에 여러 갈대를 묶어서 중앙에 꽃 형태로 새겨진 부조는 금성을 그린 것이다. 께찰꼬아뜰 또는 쿠쿨칸이 재규어발톱을 한 깃털 뱀의 입에서 나오는 부조도 있다. 그 옛날 인신공양행렬은 엘 까스띠요에서 내려와 금성의 제단을 지나 세노떼로 걸어갔다.

 

   깃털뱀 신 께찰꼬아뜰의 부조 


 

   지하세계의 입구, 신성한 세노떼


금성의 제단 서쪽으로 넓은 길이 나 있다. 바닥이 거친 돌길을 걸어 약 300m 정도 들어가면 마야의 신성한 연못 세노떼가 있다. 지름 60m의 거대한 석회암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세노떼는 석회토양에 빗물이 스며들며 생성된 지하연못이다. 낭떠러지 길이가 35m, 수면에서 지표까지 22m로 커다랗고 깊은 연못이다. 하얀 낭떠러지 아래 짙은 암녹색의 물을 내려다보자니 아찔함에 얼른 몸을 거둔다. 스산한 공포에 머리끝이 삐죽 선다.  

 

  암녹색 물 색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내려다보기만 해도 전율이 이는지라 고대인들은 이 연못이 지하 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 "시발바(Xibalba)"라고 믿었을 것이다. 연못으로 신에게 바치려는 봉헌 품을 들고 가던 인신공양행렬을 상상해본다. 대부분 던져지기 쉬운 아이들인 산 제물들은 따마스깔에서 몸을 정화한 뒤 화려한 장신구와 의상으로 치장한 채 연못가에 섰을 것이다. 그리고 지하세계의 입구로 여겨진 연못 속으로 던져졌을 것이다.

 

   인간제물들이 몸을 던지던 제단.


 

세노떼는 오랫동안 원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전설을 1923년 미국인 톰슨이 발굴에 성공함으로써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20세기 초에 메리다에 영사로 부임한 톰슨이 520달러에 치첸잇짜가 포함된 장원을 사들였다. 거저나 마찬가지인 가격으로 매수한 이곳은 오늘날 중앙고원의 떼오띠와깐과 더불어 멕시코 최고의 관광유적지가 되었다.

 

 

발굴당시 연못 속에서 건져 올린 것은 제물로 바쳐졌던 남, 여 그리고 아이 유골들과 꼬빨 향 덩어리, 구리나 금이 합금된 판을 두들겨 상형문자들로 채워진 접시, 정교하게 세공된 창, 가면들과 보석, 청옥장신구, 흑요석제물용 칼 등 봉헌 품 그리고 여러 가지 예술품, 직물, 조각 등 멕시코전역에서 생산된 것은 물론 멀리 남미 콜롬비아의 것도 발굴되어 학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기대와는 달리 순금제품은 많지 않았지만 상징적인 기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 보다 훨씬 컸다.


발굴된 유물들로 미루어 이 연못은 혹심한 가뭄이 들면 비의 신이 노여워하는 것이라 여기고 그를 달래기 위해 산 제물을 바치며 기우제를 치르던 제사 장소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물 대부분은 하버드 대학의 피바디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그 중 몇 개는 메리다 시 지역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해거름 무렵이라 그런지 적막한 세노떼 주변은 으스스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긴다. 제물로 바쳐진 희생자들이 몸을 던졌음직한 연못 위로 튀어나온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니 검푸른 수면으로 떨어질 듯한 아찔함에 오싹해지고 기분이 언짢다. 서둘러 이 기분 나쁜 장소를 뛰쳐나온다.

 

(큰 강이 없는 마야 지역의 세노떼는 문명의 발전에 필수 조건이었다. 세노떼에 대해서 앞 칼럼 멕시코 마야문명을 살펴보시도록!)


   무시무시한 독수리와 재규어제단과 해골제단 촘빤띨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오른쪽으로 가면 앞서 본 금성의 제단과 비슷한 독수리와 재규어제단이 나온다. 깃털 뱀이 제단 위에서 머리를 들고 오르는 형상과 께찰꼬아뜰(쿠쿨칸)으로 표현된 신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독수리와 재규어가 인간의 심장을 삼키는 부조가 있다.

 

  중앙고원 뚤라 유적지에서도 볼 수 있는 심장을 먹고있는 재규어와 독수리


 

그 곁에 있는 촘빤띨은 희생자들의 해골들을 새겨 넣은 무시무시한 제단이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닌 해골들이 기단의 사방으로 둘러 삼단으로 빽빽하게 가득 채워져 있다. 뼈다귀가 교차한 해골조각 모티브는 이후 카리브 해적선의 깃발에 새겨져 해적의 상징이 되었다. 전쟁과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해골을 그려 넣은 것은 돌떼까의 풍습이다. 이처럼 단을 둘러 새겨진 해골들과 심장을 먹는 독수리와 재규어 부조들은 치첸잇짜 사람들에게 섬뜩한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쫌빤띨의 무시무시한 모습


 

   고대의 축구 최대규모의 공경기장


마당 남쪽 끝에 자리한 공경기장은 오늘날 남아있는 경기장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신성한 의식이 행해지던 공경기장은 우주의 축소판으로 빛과 어둠의 싸움을 표현한 곳이다. 편을 갈라 주고받는 공놀이는 마야의 우주개벽과 상반된 이원성의 정신세계에 기초하고 있다. 해와 달, 양과 음, 낯과 밤, 삶과 죽음 등. 고대세계에서 공경기장은 우주를 상징하고 지식이 자라는 곳이라 믿었다. 뱀은 지식이고 공은 태양이다.


공경기장은 모든 시민이나 마을주민들이 모이는 하나의 사교장으로서 오늘날의 축구장과 같다. 공놀이는 멕시코에서 이미 3000년 이상 지속된 오래된 고대스포츠다. 생고무를 꽉 채워 굉장한 탄력을 가진 둥근 공으로 즐기던 놀이는 오늘날 축구와 같은 대중스포츠이자 당시 전 세계 어느 문명에서도 볼 수 없던 독특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미고대문화는 모두 기독교에 반하는 것이다. 뱀은 서양문화 즉 기독교에서 보았을 때 악마의 상징이다. 그 뱀이 이곳 중미문화에서 창조주로 숭앙받는 것은 기독교도인 스페인사람들이 봤을 때는 대단히 악마적인 이단이었다. 게다가 우습게도 통통 튀어 오르는 고무공을 처음 본 스페인사람들은 공속에 악마가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때까지 기껏해야 털실뭉치나 돼지오줌보 같은 것으로 만든 공을 차면서 놀았을 뿐 튀는 공 자체를 본적이 없었다. 따라서 3000여 년간 조상대대로 이어진 공놀이를 스페인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공놀이를 금지시켰다.

 

두개의 T자가 겹쳐진 공경기장은 11세기의 치첸잇짜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길이 168m, 폭 70m 로 직사각형의 넓은 운동장을 가운데 두고 북쪽과 남쪽은 둥근 링이 걸려 있는 높은 벽으로 막혀 있다. 그 위는 관람석이다. 관람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가 외부와 즉각적인 의사소통도 할 수 있었다. 직사각형의 운동장 서쪽과 동쪽 끝에는 퇴색한 붉은 색으로 단장된 신전이 있다. 신관들은 이 높은 곳에서 선수들의 목숨이 달린 경기를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공경기장을 후에고 데 뻴로따 라고 부른다.

 

 

    중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경기장

 

 

    모자이크로 새겨진 벽...퇴색했지만 당시의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다.

 

  

벽 기단에는 심하게 마모된 공놀이 부조가 새겨져 있다. 모두 공놀이와 관계된 것으로 선수들의 목을 자르는 희생의식이 그려져 있다. 중간의 부조에는 공 하나와 해골 하나가 그려지고 각각 일곱 명의 선수들이 있는 두 그룹이 그려져 있다. 왼쪽 편 그룹의 리더가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는 머리를 들고 있고 다른 선수는 무릎을 꿇고 돕고 있다.

 

    벽 중앙에 길게 새겨진 뱀

 

머리가 잘려나가 없는 목에서는 솟아오르는 피가 마치 뱀처럼 새겨져 있다. 여섯 마리의 뱀과 한 그루의 생명의 나무로 표현한 것이다. 사람의 목에서 뱀이 솟아 나오는 부조는 또또나까 문명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토지를 비옥하게 하고 다산을 상징한다.

 

    잘린 목에서 뱀이 솟아나는 장면의 부조

 

다른 부조에서는 서로 얽혀있는 뱀들이 새겨져 있다. 이 뱀들은 벽의 중앙에 있는 둥근 링으로 이어진다. 약 8m의 높이에 달린 이 링은 테니스의 매트처럼 양편을 가르는 구실을 한다. 일설에는 팔꿈치 혹은 엉덩이를 이용하여 반동으로 공을 통과시키는 골대라고 하지만 그 링을 보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의 희생제물이 되었다. 신에게 최고의 것을 바친다는 의미다.

 

   부조가 새겨진 링...경게선을 나타낸다.

 


희생자들은 이긴 것 자체가 신에게 바치는 영광스러운 선물이자 자신의 목숨 또한 신에게 드리는 것도 영광으로 알고 기꺼이 제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높은 양쪽 벽에는 깃털로 장식한 두 개의 굵은 뱀 모양 기둥이 있다.


신기한 것은 길이 135m에 이르는 경기장 양쪽의 신전 앞에서 박수를 치거나 대화를 하면 반대쪽에서 뚜렷이 들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도 반대편 끝에 있는 사람에게 정확히 들린다. 

 

   끝에서 속삭여도 잘 들리는 구조

 

공경기장을 빠져나오면 촘빤띨 앞 경기장과 붙어 있는 벽에 쿠쿨칸 혹은 재규어신전이란 부르는 작은 성소가 있다. 내부에 왕, 전사, 사제 등이 세심하게 새겨졌고 윗부분에는 아직도 선명한 색상의 칠이 돋보이는 벽이 있다. 그 앞에 마치 이 조각들을 보호하려는 듯 놓여진 재규어석상이 있다. 

 

 

  

 

    재규어 신전


13세기 초, 치첸잇짜를 버린 후 고전기 똘떼까-마야의 잇짜 족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마야빤에서 유까딴 반도의 문명을 이끌어 가지만 예술부분에서는 그 감각이 현격히 떨어지는 쇠퇴기를 맞는다.


치첸잇짜 유적지는 꼼꼼하게 보고 다니려면 하루해가 정말 짧기만 하다. 6시 문을 닫는 유적지를 빠져 나오니 그 많던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허허벌판위로 서서히 어둠이 내려온다. 4월부터 10월 사이 어두워지는 7시부터 ‘빛과 소리 쇼’가 펼쳐진다. 치첸잇짜와 마야역사를 그래픽과 조명으로 피라미드에 투사하면서 설명한다.

 

한가지!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치첸잇짜의 관리자가 한인혈통 즉 에네껜 후손이라는 사실. 라몬 리 레혼(Ramon lee Rejon)씨는 현재 유적지 관리 소장이다. 100여년전 제물포항을 출발한 1033명의 구한말 조상들은 치첸잇짜에서 3시간 거리인 메리다의 에네껜 선인장 농장에서 계약노동자로 처음이자 마지막 멕시코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을 에네껜이라 불렀으며 100년지난 오늘날 에네껜 후손들은 멕시코에 약 3~4만명, 쿠바에 1천여명에 이른다.

 

        비를 모아 저장해둔 우물 용도인 출뚠

 

      치첸잇짜는 계속 발굴 중이다.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발굴지의 신전.

 

 

       오른쪽 인물이 에네껜 후손인 라몬 리 레혼 치첸잇짜 유적지 관리소장이다.

 

*알짜 정보; 유적지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8시에서 5시 사이에 개방한다. 입장료는 빛과 음향 쇼를 위한 재 입장을 포함한 80뻬소다.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가면 35뻬소를 더 낸다. 엘 까스띠요 피라미드 내부는 11시에서 1시 사이, 4시에서 5시 사이 하루 2시간만 개방한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현란한 빛과 음향 쇼는 매일 밤 35분간 밤 7시와 9시에 있다. 그러나 유적지에서 밤을 새거나 근처의 마을에 머물지 않는다면 쇼가 끝나고 나면 버스가 끊겨 메리다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