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긴박한 멕시코 대선 투표날 표정

미키라티나 2006. 7. 4. 08:34
 

멕시코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7월 2일 멕시코 대선 투표 날.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대내외적으로 그 결과에 대한 주목을 받던 멕시코 대선 투표가 끝났다. 그동안 과열이라고 표현할 만큼 지난 6 개월간 멕시코 식 표현으로 “대통령 의자”를 향한 후보들의 격렬한 경쟁이 결승점에 이른 것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주변국인 중남미와 유럽에서도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번 멕시코 대선은 개인적으로도 그 결과가 매우 궁금하다.


이번 선거는 멕시코 대통령을 비롯해 500명의 연방의회 상원과 128명의 연방의회 하원 그리고 수도 멕시코시티의 시장과 과나화토, 할리스코, 모렐로스 등 3개주의 주지사 선거와 함께 지방 의회 선거도 함께 치러졌다.


모두 5명의 대선 후보가 출마했지만 사실 정상을 달리는 두 후보 즉 우파인 집권당인 국민 행동당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와 야당인 좌파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 사이에 오차범위 내 지지율로 막판까지 예측이 힘들어 선거전과 마찬가지로 매우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두 후보 지지자들의 막판 힘겨루기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지기라도 하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듯 격앙되어 있었다.

 

뉴스 시간에도 광고를 내보내는 철저한 상업방송들인 텔레비사와 TV아스테카 방송국들은 광고도 생략한 채 하루 종일 대선 후보들의 근황과 투표 상황에 대해 전국을 연결하고 하늘에는 헬기를 띄우며 생방송으로 속속 소식을 전했다. 뉴스 중간마다 광고를 내보내 감질나게 하던 이 두 방송사가 투표 상황에 대해 몰입하는 것 자체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아침 8시에 문을 연 투표소에 가장 먼저 찾은 후보는 검은색 캐주얼 가죽잠바를 입은 오브라도르. 이혼하고 현재 혼자인 오브라도르 후보는 두 아들과 함께 투표를 했다. 오브라도르가 찾은 투표소 앞은 취재진과 지지자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장면만 본다면 오브라도르가 대통령이 된 듯했다.


칼데론은 넥타이에 깔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고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투표장을 찾았다. 헬기가 뜨고 취재진이 붐볐지만 오브라도르의 인기에는 조금 못 미친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만면에 웃음을 띄며 여유 있어 보였다.


속보로 들어온 소식에는 미처 준비되지 못한 투표소의 모습도 함께 전해졌다. 예를 들어 멕시코 만에 위치한 베라크루스 시에서는 오후 12시에 이미 투표용지가 동이나 투표하러 온 시민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항의하는 모습도 있었으나 대체로 평온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 달 이상을 끌어오는 선생님들의 격렬한 시위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 보호지로 유명한 와하까 시는 관광객이 끊어졌지만 선생님들은 잠시 시위를 멈추고 투표를 했다.  


필자도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집 근처의 투표소를 찾았다. 우기가 시작되었지만 유난히 화창한 날씨가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향하게 했다. 멕시코는 18세부터(우리나라 나이로 19세) 투표를 할 수 있다. 여러 연령층의 유권자들은 가족들이 모두 투표를 하러 나온 듯 보였다.

        동네에 설치된 투표소...이번 선거에는 전국에 모두 13만 488개의 투표소가 설치됬다.


입구에 늘어선 기다란 줄이 이번 선거의 열기를 강하게 느끼게 했다. 일일이 유권자의 얼굴과 투표 증 그리고 등록된 사진을 일일이 대조한 뒤 내어주는 투표용지는 모두 6장. 3장은 대통령과 연방의회 상, 하원을, 3장은 멕시코시장과 시의원, 구청장을 선출하는 것이다.

 

각 선거용지는 색깔이 달라 표기를 한 뒤 용지와 같은 색의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아마 유권자 중에 간혹 있을 문맹자를 위한 배려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위해 각 당에서 나온 옵저버들이 눈을 부릅뜨고 투표하는 유권자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진기와 휴대폰 사용 금지 표시가 벽에 붙어 있다. 평상시의 멕시코답지 않게 매우 신중한 분위기다.

            철저한 보안...휴대폰과 사진기가 금지 표시로 그려져 있다.


투표소의 자원 봉사자인 페데리코 가르시아씨는 지난 선거보다 올해 시민들이 더 많이 참가하는 것 같다고 했다. 투표소에서 만난 50대 가정주부인 레오노르 뻬네도씨는 지금까지 여러 번 대통령 선거에 참가했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투표하러 오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누구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칼데론”이라고 했다. “70여 년간 PRI 당이 지배를 했다. 겨우 6년으로 PAN 당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 그를 선택한 이유다.


일명 딱정벌레라고 불리는 폭스바겐의 초록색 택시기사로 일하는 25세의 아르뚜로 멘데스씨도 칼데론을 선택했다. “오브라도르 후보의 공약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빈민들에게 돈을 퍼 주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빈민들에게 돈을 주면 그들은 더 게을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들이 뼈 빠지게 번 돈으로 낸 세금으로 선심정책을 쓰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동안 오브라도르 후보의 현직 대통령을 비하한 독설에도 실망했다. 그래서 여당인 칼데론을 선택했다.” 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폭스바겐 택시기사는 하루하루 노동으로 먹고사는 하층에 속한다.  


한편,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행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에두아르도 토레스씨는 “이번에 야 말로 진짜 바꿔야 한다. 오브라도르는 부자와 자본가들을 위하는 지금의 멕시코를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으로 진심으로 믿는다.”라며 오브라도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생애 처음으로 투표를 한다는 20살의 대학생 에리카 로드리게스 양은 “오브라도르의 정책이 멋지다. 다함께 잘살고 특히 노인과 빈민들이 행복해진다면 이상적인 나라가 아닌가. 학교 친구들은 모두 오브라도르 팬이다.”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답을 했다.


투표는 평온하게 진행되었지만 투표가 끝나고 개표 결과가 가까워질수록 양 후보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오후 5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큰 비를 퍼부어댔지만 오브라도르 후보 지지자들은 멕시코시티의 심장인 소칼로에 모여 큰 무대를 설치하고 노란 깃발을 흔들며 축제를 펼쳤다.


TV아스테카에 출현한 정치평론가인 세르히오 사르미엔토씨는 “이런 상황은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라 신중해야 한다.” 고 언급했다. 모두들 밤 11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간에 누가 앞서가는지를 발표하게 되어 있었다.


밤 11시. 루이스 카를로스 우갈데 선거위원회 회장은 “이번 선거는 우위의 두 후보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접전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수요일에 차기 대통령을 밝힐 것이다. 선거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는 국민들은 각 후보의 결과 발표에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라고 발표했다. 지난 선거에서는 선두와의 차이가 많이 나서 중간발표로도 그 결과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오브라도르 후보가 먼저 지지자들 앞에 나섰다. 오전의 투표소에서와는 달리 검은색 정장에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지금까지의 개표 결과를 보면 우리가 50만 표를 앞서고 있다. 선거위원회가 공언한 것처럼 단 한 표라도 우리가 앞서면 우리는 승리하는 것이다. 지금 소깔로로 가겠다.”라고 했다. 많은 비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소깔로에는 그를 기다리는 지지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어 칼데론 후보의 발표. 만면에 웃음을 띈 표정으로 지지자들 앞에 선 칼데론은 여러 단체들이 한 출구조사 결과를 들고 나와 하나하나 읽으면서 “처음부터 우리는 앞서고 있었다. 우리가 승리한 것이 확실하다. 멕시코 역사상 올해처럼 많은 유권자들이 참여하고 치열하게 경쟁한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했다.”라고 하자 지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와 박수로 응했다.


두 후보가 서로 승리를 확신할 만큼 출구조사와 예측불허의 개표결과로 두 후보와 지지자들은 마음을 졸이며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새웠다. 7월 3일 현재 98%의 개표 율을 보인 가운데 집권당인 칼데론 후보가 1%를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당선으로 중남미를 뜨겁게 달구었던 좌파 정부의 행진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인지. 이에 오브라도르 후보는 개표 부정을 의심하며 자신이 불리할 경우 전면 재검토를 주장할 것이라고 한다.


여당과 야당, 가진 자와 빈민, 좌파와 우파. 6개월과 펼쳐진 치열한 선거전과 투표 날의 뜨거운 열기는 모두 멕시코를 더 좋은 나라, 모두가 다 잘 사는 그런 나라로 만들려는 멕시코국민들의 염원이 만들어 낸 상황들이라고 믿고 싶다.


이방인으로서는 어느 후보가 될지라도 이들의 간절한 염원을 눈에 보이는 현실로 만들어 줄 멋진 정책을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렵게 당선된 만큼 차기 멕시코 대통령은 상대 후보의 지지자들과 조화로운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멕시코 역사상 초유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멕시코 대선은 그 결과를 지켜보는 국민들과 대외 국들을 바짝 긴장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