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멕시코 NAFTA의 그늘, 그 참담한 현장을 가다.

미키라티나 2006. 5. 29. 03:32

최근 학계와 언론에서 멕시코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멕시코.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면 적게는 18시간 많게는 35시간도 걸린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등장한 멕시코는 서부영화에서부터 갱스터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에 나타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멕시코로 가자!’ 고 한다는 것. 영화 ‘델마와 루이스’, 리처드 기어의 출세작 '브래드레스', 키아누 리브스의 ‘폭풍 속으로’, 브랫 피트와 줄리엣 로버츠의 ‘멕시코’...일단 생각나는 영화들 속에서 일탈한 주인공들은 모두 멕시코로 가자고 외친다.


3년 전인가? 서울시의 홍보포스터에는 알록달록한 판쵸라고 부르는 망토를 걸치고 커다란 솜브레로를 쓴 채 당나귀를 탄 멕시코사람이 등장했다. 잠깐 물의를 일으키는 듯하더니 곧 묻혀버렸다.


사람들은 코로나맥주와 38도의 독한 테킬라를 마시며 멕시코를 떠올린다. 은장식을 촘촘히 붙인 쫙 달라붙는 바지에 커다란 챙 모자를 쓰고 흐드러진 목소리로 베사메무쵸를 부르는 낭만적인 마리아치 역시 멕시코의 상징이다.


최근 월드컵으로 다시 정열적인 축구강국 멕시코가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멕시코는 미국범죄자들의 손쉬운 도피처, 판초와 솜브레로, 코로나맥주와 테킬라, 마리아치, 베사메무초 그리고 축구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막상 멕시코에 발을 디디면 도피와 낭만, 정열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멕시코를 만나게 된다. 인구 2천4백만의 거대한 공룡도시,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까지 올라가는 문명들이 남긴 웅장한 피라미드와 유적지들, 사막, 정글, 카리브 해, 만년설이 덮여있는 높은 산맥 그리고 불꽃이 활활 타고 있는 광활한 유전시설과 산업단지들.


세계무역규모에서 멕시코는 한국과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서로 10위와 11위를 마크한다. 2002년, ABC 3국으로 평가됐던 남미의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경제침체를 맞아 고전할 때 멕시코는 승승장구하며 경제 종주국으로 우뚝 섰다. 멕시코가 중남미의 경제관문으로 자리매김을 하자 대한무역공사는 미국에 있던 중남미본부를 2002년 멕시코로 옮겼다.


현재 한국정부는 칠레에 이어 멕시코와 FTA를 추진 중이다. 이미 멕시코는 1994년 미국과 캐나다와 NAFTA를 체결한 이후 32개국과 FTA를 맺고 있다. 하지만 2003년 일본과 FTA를 맺은 이후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기 위해 6월 5일부터 예비협상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에 학계와 언론에서는 이미 12년 전 미국과 캐나다와 FTA를 맺은 멕시코를 분석하느라 멕시코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이들은 당시 협상담당자들과 정부관계자들, 경제전문가들 그리고 사회운동가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나프타 12년의 결과를 해석하고 있다.

 

                    

                         나프타 체결을 승인한 1998년 11월 18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멕시코에서 7년째 살고 있지만 이처럼 어두운 멕시코를 만나보기는 처음이다. 긴 역사와 신비하고 멋진 문화유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보물을 가진 나라에서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멕시코사람들. 그 멕시코가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 힘없는 하나의 물방울로서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을 타고 흘러갈 수밖에 없는 멕시코 사람들의 이야기다.


5월 4일, 파닌디쿠아로 읍.


멕시코시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미초아칸 주는 해발 1500m에서 2700m 사이의 고원지대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토양과 강수량이 좋아 부지런하기만 하면 1년에 두 번 수확을 낼 수 있어 전통적으로 농사를 많이 지어왔다.


고속도로를 타고 5시간을 달려가면 마초아칸 주의 파닌디쿠아로 라는 어려운 이름의 작은 읍이 나온다. 이 읍의 주변마을들은 현재 주민의 반 이상이 집을 비우고 없다. 한 마을을 들어서니 마치 유령이 나올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어야 할 아이들은커녕 개도 사람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텅 빈 영화세트장에 온 듯하다.

 

 

                    파닌디쿠아로 읍의 한 마을. 대낮인데도 마을의 주도로는 텅 비어 있다.

 

길가의 집들은 대문들이 모두 굳게 닫혀있고 쇠사슬로 꽁꽁 채워져 있다. 집 안을 들여다보니 마당의 무성한 잡초들이 집주인의 오래된 부재를 말해주고 있다. 미처 가져가지 못한 트럭은 움직이지 못하게 바퀴가 몽땅 빠져있다. 전기계량기도 멈춰있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러 채의 빈집을 지나고나니 열어놓은 창문에서 라디오소리가 난다. 문을 두드려보니 초등생과 중학생 정도의 남매가 얼굴을 내민다. 이 집은 아이들 세 명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다른 마을사람들처럼 아이들의 부모님은 “오트로 라도로 갔다”고 한다. Otro  Lado. 멕시코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 말. (미국국경 넘어) ‘저쪽’이라는 뜻이다.


나프타 이후 미국에서 대량생산되어 싼 값에 쏟아져 들어오는 곡물들과의 경쟁으로 생산원가도 건지지 못하는 암담한 현실에 마을농부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미국국경을 넘어갔고 자리를 잡은 뒤 가족들을 한 사람씩 불러들인 결과 이렇게 빈집이 많다고 했다. 미처 넘어가지 못하고 남은 가족들은 이처럼 생이별을 하고 있는 것이 이 마을의 현실이다.


5월 11일, 티후아나 시.


현재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새 이민 법안이 26일 미국상원에서 통과했고 1100km에 이르는 국경에 새 장벽을 곧 설치할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밖을 나서면 맨 먼저 끝없이 길게 뻗은 벽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과 멕시코 땅을 가르는 국경선이다.


2층만 올라가도 건너편 미국 땅이 보인다. 멕시코 쪽 벽은 붙들고 두 발짝만 오르면 훌쩍 뛰어 넘을 만큼 낮은 반면, 낮은 고도로 헬기가 뜨고 국경감시차량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도로 건너편의 미국 벽은 고압선과 철망이 설치된 우람한 벽이다. 군데군데 감시카메라와 조명이 높은 장대위에 설치되어 있고 바닥에는 센서가 작동한다고 한다. 물론 불법이민자를 잡기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마약유통을 감시하기도 한다.

 

 

                 티후아나 공항 주차장에서 바라본 국경 장벽. 앞의 벽이 멕시코 그 뒤의 벽이 미국

                 장벽이다. 그 너머는 미국.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애환이 서린 곳인지.

 

2년 전 티후아나에 왔을 때 도로를 따라 긴 벽에 설치된 십자가 조형물들이 인상에 남았다. 그때는 이를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길게 늘어선 십자가 하나하나에는 국경을 넘다 숨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모두 400개. 그 사이에는 1995년부터 해마다 숨진 사람들의 숫자가 관에 쓰여 있다. 가장 많았던 해는 2000년 499명. 신원이 밝혀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16세 소녀의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가 눈에 띈다. 부모를 만나러 넘으려 했겠지. 끝없이 이어지는 십자가 행렬 끝에는 2000년부터 숨진 이들을 센 숫자가 그려져 있었다. 3701 명. ‘얼마나 더?’ 라는 문구가 분노를 일으키는 듯 했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국경을 넘다 숨진 이들을 추모한 조형물.

 

하지만 이 모든 첨단장비도 생명을 담보로 장벽을 넘어가는 사람들을 막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제 얕은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사막으로 향한다. 사막에는 방울뱀과 전갈과 가시선인장들이 위협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길을 잃고 탈수로 목숨을 잃는다. 그날 밤. 티후아나 시 가장자리인 차가운 태평양바다를 건너 미국을 들어가려고 사람들은 국경감시원들이 잠드는 새벽을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새 이민법과 새 장벽설치로 사람들은 사막으로 향한다. 소노라 주 노갈레스 시 근처의 사막 국경은 이렇게 한 줄 철조망 뿐이라 쉽게 넘는다. 하지만 그 이후는...독뱀, 독충, 갈증, 탈수, 더위와 추위, 가시덤불과 싸우며 표지도 없는 길을 며칠이나 걸어야 한다.

 

국경 소도시였던 티후아나는 나프타 이후 급속히 팽창하였다. 마낄라도라라고 불리는 산업단지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티후아나에 왔다 주저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마낄라도라 노동자로 흡수되었다. 영화 ‘트래픽’에서 배경으로 나왔던 것처럼 티후아나의 빈민촌은 열악하다.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는 판자촌은 미국계 기업들의 간판으로 어지러운 도심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공항길이 끝나는 지점의 국경선. 멕시코는 국경을 따라 빈민촌이 형성되어 있다.

 

수도는커녕 하수구 시설도 제대로 없고 쓰레기 더미속의 판자촌은 대부분 인근 마낄라도라 노동자들이 기거하고 있다. 마낄라도라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한 여성노동자의 집을 찾았다. 판자와 종이로 덕지덕지 이어붙인 집은 문도 없이 커튼을 쳐놨다. 들어서니 젖먹이아이부터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다 큰 아이가 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웃아이들이 놀러온 줄 알았다. 하지만 모두 가족이란다. 부엌이자 거실이자 침실역할을 하는 이 조그만 단칸방에서 모두 11명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6개월 된 손자부터 40살 할머니까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티후아나 외곽. 언덕에 형성 판자집들.


순간 목이 메었다. 남편과 헤어진 이 여성노동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 것과 얼굴을 가리는 조건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작업반장을 맡고 있는 12년 경력의 이 노동자는 주급 1200 페소(약 10만원)를 받지만 하루 12시간 노동으로 초과 일을 해서 1주일에 약 1600 페소(약 13만원)를 받는다고 했다. 그것으로 11명이 먹고 살기에는 빠듯하다고 했다. 번 돈의 대부분은 식비로 나간다. 아이들 학교는커녕 병이 나도 병원은 꿈도 못 꾼다. 현재 25세 된 큰 딸은 심장병이 있어 수술을 위해 의료카드가 있는 사람과 결혼해서 내보냈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인터뷰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얼굴도 해맑다. 아주머니는 그저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고 주급을 잘 챙겨서 먹고살기를 바라고 아이들은 그저 식구들과 한방에서 사는 것이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파리까지 득실거리는 이 좁은 단칸방에서.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현실의 무게가 아직 그들에게 무겁지 않은 듯. 분노할 상황이지만 쫓겨날 두려움과 자포자기로 안으로 삭이는 이들의 표정에 쓴웃음이 묻어있다.


5월 13일, 과달까사르 읍.


멕시코시에서 북쪽 고속도로로 대여섯 시간 떨어진 산 루이스 포토시 주에 속하는 조그마한 읍이다. 가는 길은 미국서부영화에서 낯이 익은 건조한 반 사막지대라 스쳐가는 들과 산에는 온통 야자선인장들과 메스끼떼스라 불리는 가시나무들만 무성하다. 하지만 길가엔 이 지역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의 가죽을 걸어놓고 팔고 있다. 방울뱀부터 살쾡이까지. 97년부터 이 지역은 자연보호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삶이 팍팍한 이곳 사람들은 농사로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팔고 있다.


메탈클래드 사건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과달까사르 읍은 500년 전 스페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마을 한가운데 성당을 짓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원주민들이 살았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인구 1200명 남짓한 이 조그맣고 평화로운 마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나프타를 체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나프타를 체결할 당시 3국은 수많은 조약을 맺었다. 그 중 11조항은 외국기업의 활동에 특혜를 주는 조항이다. 메탈클래드 사건은 이 11조항으로 멕시코에 불법적인 사업을 펼치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못하게 되자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월드뱅크 산하의 법정에서 승소하여 1600만 달러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챙긴 사건이다.


메탈클래드는 미국의 산업폐기물처리기업이다. 1993년부터 메탈클래드는 방사능 폐기물과 폭발성 화학물질, 병원폐기물 등 독성이 강한 산업쓰레기들을 이 마을에서 28km 떨어진 "라 페드레라" 라는 곳에 묻기 시작했다. 메탈클래드는 이곳을 필두로 멕시코의 4개 주 35지역에 산업폐기물을 묻을 계획이었다.

 

 

          메탈클래드가 묻어놓은 산업폐기물 처리장. 왼쪽 세곳의 둔덕이 문제가 되고 있다.

 

시골사람들은 처음엔 이 기업이 이곳에서 뭘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커다란 창고가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가 그 창고에 물건들을 잠시 보관했다가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시설을 짓게 되면 마을사람들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또 병원도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 메탈클래드는 연방정부에 의해 사업허가를, 주정부에 의해 토지사용권을 허락받았지만 뒤늦게 산업폐기물을 이곳에 버리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읍 정부는 사업장건축을 허가하지 않았다.


멕시코 법에 의하면 이 세 정부의 허가을 받아야 사업을 할 수 있는데 메탈클래드는 이를 무시하고 폐기장을 만들었다. 그린피스의 활동으로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 분노한 주민들은 시위에 나섰고 이미 묻어버린 세 곳의 산업폐기물들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주변마을을 덮쳤다. 기형아가 태어나고 사람들은 암으로 죽어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메탈클래드는 더 이상 산업폐기물들을 이곳에 버리지 못하게 되었고 이에 11조항에 따라 멕시코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승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달까사르 읍은 어떤가. 1993년부터 2006년 동안 주변 마을에서는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43명, 무뇌아, 뇌수종, 다운증후군, 척추 병 등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가 21명이나 되었다. 한 달 동안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4명이나 된 적도 있었다. 대도시도 아니고 고작 인구 1200명의 작은 마을에서 말이다. 이미 독성은 지하수를 타고 주변마을로 퍼져나갔고 그 악영향은 지금 나타나고 있다. 현재도 암 환자가 4명이나 된다.

 

마을을 방문한 날 마을공원에서 온몸의 뼈가 녹아내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30살의 여성을 보았다. 정작 환자자신은 암인지 모르고 있다고 했다. 평화롭기만 한 시골마을에 드리워진 죽음은 쉽게 걷어질 것 같지 않다. 나프타 11조항은 멕시코법보다 우위에서 멕시코주권을 유린하고 있는 하나의 예다.


5월 3일, 멕시코시 북부 에카테펙 구.


멕시코의 유명한 고대피라미드인 떼오띠와깐 유적지 가는 길. 길 양 옆 산등성이에는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달동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밖에 없기 때문에 당시 도시외곽에 위치한 이곳에 무조건 판자 집을 짓고 들어와 살았다. 이러한 곳을 사람들은 ‘인바시온invacion’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2년을 살다보면 그곳은 자신의 집이 된다.

 

이곳은 아직 변변한 상수도나 하수도가 없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주민들은 대부분 전기를 ‘도둑질’ 해서 쓴다. 주변의 전신주에서 선하나 연결해서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이곳에는 공권력이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에까떼뻭 구는 인구가 300만에 이르는 멕시코 최대 구다. 하지만 치안부재로 늘 크고 작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멕시코시 도로에서 행상을 하거나 주변의 마낄라도라에서 일을 하고 있다.


5월 10일, 산타페.


멕시코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신도시다. 멕시코시는 500년 전에는 호수였다. 스페인식민지를 지나며 호수 물을 빼고 매립하면서 오늘날 인구 2400만의 메트로폴리탄이 된 것이다. 따라서 도심지는 지반이 약한데다 잦은 지진으로 큰 빌딩을 보기 힘들다. 그러나 산타페는 이곳이 과연 멕시코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할 만큼 마천루의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다. 10여 년 전에는 쓰레기매립장이었다가 빈민촌이었다가 이제 화려한 변신을 한 셈이다.

 

 

                 산타페. 7년 전 만해도 보이지 않던 고층빌딩의 마천루

 

7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고급백화점이 몰려있는 부촌쯤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십 층의 고층빌딩들이 속속 올라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모습이 변하고 있다. 신도시 중심부에는 아름다운 야외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의 빌딩들에는 포드, HP, IBM, 크라이슬러 등 다국적기업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거리에는 고급자동차가 즐비하고 멋진 양복을 입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우아한 식당과 고급 카페, 패션잡지에서 나온듯한 근사한 여성들은 또 다른 멕시코의 모습이다. 근처의 부지에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멋진 고층빌딩이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산타페는 멕시코의 부자와 가난한 자의 양극화가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현장이다.  

 

 

         산타페 신시가지의 중심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공원이 들어서 있다.

 

물론 이 모든 슬픈 현실의 저반에 나프타가 그 원인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12년 전, 멕시코정부가 야심 찬 포부로 제 3 세계를 탈피하여 선진국 대열로의 진입을 꿈꾸었다고 한다면 최근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7백만 명의 불법이민자들은 누구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당시 나프타를 체결했던 관리와 정부관계자들은 말한다. 멕시코는 나프타 이전에 비해 오늘날 대외수출과 교역량이 당시의 몇 배의 퍼센테지와 천문학적인 액수로 급증하였으며 실업자 수도 줄어가고 있다고. 다만 대를 위해 나타나는 희생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멕시코의 국제적위상이 나프타 이후 매우 높아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외국으로부터 무관세로 들여온 원자재와 부품으로 조립만 해서 갖다 파는 하청기업으로 전락한 마낄라도라, 값싼 농산물수입이라는 폭격을 맞아 붕괴된 농촌, 쿼터제 폐지로 멕시코 영화 황금기를 아득한 옛일로 그리워하며 CF로 생계를 잇고 있는 영화감독들, 물밀 듯이 밀려들어온 패스트푸드로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비만 1위국으로의 진입을 앞둔 국민들, 자고 일어나면 더 늘어나있는 거리의 행상과 노점들, 길거리 아이들, 납치 1위국, 급증한 마약과 범죄. 이 모습들은 모두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할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 사람들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낙천적인 기질마저 없었다면 언젠가 폭발할 일이다. 고층빌딩 사무실에 앉아 프레젠테이션의 수치에만 신뢰를 줄 일은 아닌 것이다.


멕시코를 비롯하여 이미 세계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한 노련한 선수인 미국과의 FTA를 피할 수 없다면 한국은 멕시코의 현실을 거울삼아 보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조항의 문자하나 단어 하나에도 온 신경을 집중해서 살펴가면서 체결해야 할 일이다. 조약은 양국간에 동등하게, 조약서도 영어와 한글로 작성할 것도 잊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 


오는 6월 4일 일요일 저녁 KBS 일요 스페셜에서 “NAFTA 12년, 멕시코의 교훈”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합니다. 촬영현장을 함께 다니며 목격한 참담한 멕시코의 또 다른 모습이 쉬이 잊혀지지 않아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