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

타임캡슐 벽화, 보남팍

미키라티나 2010. 8. 20. 17:32

흔히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다고 생각들 하지만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에도 숨 막히게 더운 정글 속 광대한 지역에 걸쳐 세련되고 아름다운 피라미드들이 수해 속의 암초처럼 솟아있다. 처음 이 거대한 구조물들을 본 사람들은 이집트나 그리스 심지어 전설의 아틀란티스 문명과 관련을 짓기도 하였지만 그 동안의 수많은 조사와 연구 끝에 아메리카고대문명들은 구대륙과의 교류는 전무하며 여러 부족들이 지형이나 자연 환경 때문에 각각 고립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고유의 문명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카리브해안에 면한 마야 유적지 뚤룸 

 

마야는 해발 2700m의 멕시코 남부고산지대 치아빠스 주에서부터 고온다습한 저지대 정글 따바스꼬 주, 카리브 연안을 끼고 있는 유까딴 반도의 건조한 석회암 저지대를 중심으로 과테말라 고지대와 저지대 밀림, 벨리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일부까지 미치는 광대한 영토와 약 3000년을 지속하고 있는 중미 최고 최대의 문명이다.


마야는 중미 여러 문명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그들의 숫자체계, 달력, 상형문자로 학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명이 성립되는 데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풍요로운 큰 강과 비옥한 삼각주 그리고 사람이 살만한 적절한 기후 등 문명 발상의 기본적인 몇 가지 조건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 온도와 습도가 아주 높은 짙은 녹색의 열대우림 깊은 곳에 도시와 신전을 세우고 고도로 발달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것이 마야문명의 특징이다. 스페인 군이 처음으로 이 원시의 밀림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눈앞에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난 버려진 도시의 폐허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야를 둘러싼 방대한 수수께끼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많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왜 그러한 웅장한 기념물들을 세웠는가. 그리고 환상적인 도시들을 정글 속에 버려두고 갑자기 사라졌는가...


유까딴 반도가 시작하기 직전에 위치한 라깐돈 정글에는 1946년 발견된 보남팍이 있다. 마야어로 채색된 벽이라는 뜻의 이 유적지에는 비록 흉포한 전사들과 잔혹한 전쟁을 묘사하였지만 아름답고 완벽하게 보존된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 보남팍의 벽화는 유토피아처럼 평화로운 마야라는 이미지를 한 순간에 깨뜨리고 마야의 신비를 풀어준 귀중한 단서로서 피의 마야 모습을 보여 준다. 적색, 황색, 녹색, 청색의 물감으로 성장한 전사들과 귀족, 신관, 왕 그리고 전쟁포로들이 묘사된 섬뜩한 내용의 벽화들로 마야세계를 엿볼 수 있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낮은 구릉을 몇 개 지나고 마야 식의 높은 야자지붕의 집들과 마을들을 지난다. 보남팍은 더위로 사람을 쥐어짜는 라깐돈 정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름 모를 정글 새들의 지저귐, 원숭이의 울부짖음, 커다란 이구아나가 기어 다니는 유적지는 정글 속 마야도시 중 가장 인상적이다. 보남팍은 서기 250년에서 792년 사이에 번성하였다. 당시 주변 약 4 평방 km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으나 오늘날은 몇 채의 건물만 달랑 있다. 보남팍은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그런지 방문객이 정말 적다. 10명도 채 안 되는 방문객들과 함께 입구에서 약 3km 정도를 창문이 없고 덜컹거리는 유적지 전용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유적지 전용버스

              유적지로 들어가는 작은 길, 높이 솟은 세이바 나무들

 

유적지에 들어서면 광장과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광장 한 가운데 5m 높이에 2m 넓이의 커다란 석비가 위엄 있게 서있다. 석비에는 보남팍의 마지막 주인인 찬 무안 2세의 상이 새겨져 있다. 성장한 채 오른손에는 의식용 창을, 왼손에는 지하세계의 신인 재규어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석비에 새겨진 상형문자는 찬 무안 2세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신전으로 오르는 계단 위에 광장의 것보다 좀 작은 두 개의 석비가 더 있다.

 

          길끝에 나타난 유적지 전경 가운데 석비에 부조가 새겨져있다.

 

                                             찬 무안 2세의 석비

 

오른쪽에 있는 석비는 왕과 두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왕이 스스로 희생의식을 펼치는 것을 도와주는 한 사람은 어머니고 한사람은 아내다. 왼쪽의 것은 선 스페인 기에서는 굉장히 드문 얼굴인 턱수염을 가진 사람을 무릎 꿇리는 그림이 조각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에는 하나의 계단 위에 서 있는 여러 개의 건물들 중에서 보남팍의 상징이 된 벽화가 있는 건물은 오른쪽 중간에 있다. 건물 외벽에는 파괴되어 흔적만 남은 조각들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왕의 희생의식을 돕고있는 어머니와 아내

 

          맨 오른쪽 계단위 건물안 방마다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다.

 

벽화의 신전은 오른쪽에 있는 세 개의 방을 가진 작은 건물이다. 마치 옛날 얘기를 하듯 그려진 사실주의적인 그림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많이 퇴색된 색채로 희미한 영상들만 남아 있다. 이 신전의 벽화들은 멕시코시 인류학박물관에 똑같이 재현되어 있다. 방마다 들어가는 문설주에도 그림을 그렸던 흔적도 보인다.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작은 문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사방의 벽에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조그마한 방이 나온다. 

 

벽화방들이 있는 건물 

 

 

건물의 외관도 여러인물들로  조각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이젠 흔적만 남아있다.

 첫 번째 방은 지배자들의 후계자계승의식을 그린 그림으로 화려하게 성장한 고관대작들이 일렬로 그려져 있다. 이 행사를 빛내고 있는 연주에는 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악기와 깃털로 만든 양산이 등장한다. 지배자는 팔에 후계자인 아기를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맨 아래의 벽에는 종교적인 여러 가지 동물 가면을 쓴 신들이 그려져 있다. 중간 중간에 쓰인 상형문자들이 인물들의 이름이나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방 입구 기둥과 천정에도 부조가 가득 새겨져 있다. 색칠은 희미하다 

 

                하지만 무엇을 나태내는지는 분명하다. 머리채를 잡힌 자는 패자이고 머리채를 잡은자는 정복자이다.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후계자인 아이를 소개하는 자리. 맨 오른쪽 단위의 인물이 아기를 들어올려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방은 잔혹하게 표현된 초현실주의적인 터치의 무시무시한 전쟁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래층과 그 위에는 포로를 사로잡아 막 창으로 적을 찌르고 있거나 목을 조르는 모습 혹은 도망을 가는 포로와 전사들이 싸우는 모습이 빽빽하게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터치가 아주 리얼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마치 눈앞에 잔인한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듯 오싹한 공포를 주는 그림이다.  

 

유리판으로 입구를 가려놨다. 이젠 방안엔 못들어가고 밖에서만 봐야한다.

 

전쟁 벽화, 긴 창으로 적을 찌른다.

멕시코시티 역사인류학박물관 마야실의 재현그림

 

그 한쪽 위 벽에는 깃털 장식으로 성장한 승자들이 위엄이 가득한 눈빛으로 포로를 내려다보고 그 아래에는 전쟁 포로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있다. 손가락의 손톱을 뽑고 있는 모습이나 산발을 한 채 손톱이 모조리 뽑혀 피가 흐르는 손을 고통스럽게 쳐다보는 포로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투 장면은 몸과 몸을 부딪쳐 싸우는 백병전으로 어떤 전사들은 포로로 죽이지 않고 사로잡는 모습도 있다.  

 

                                         포로 고문

 

                                 손톱을 뽑혀 피를 흘리고 있는 포로들

 

                멕시코시티 역사인류학 박물관의 마야실의 재현 그림 


세 번째 방에는 승전의 축제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려한 깃털과 오색 자수가 수놓인 아름다운 깃발들로 치장한 장수들이 풍악 속에 정렬하고 있다. 그림의 계단 위에는 다른 방에서 그려진 것 보다 더 화려하고 커다란 초록 깃털 관과 자수 깃발을 들고 있는 두 인물을 볼 수 있으며 그들 앞에 풍악을 울리는 악단들이 있다. 두 인물 아래의 계단에는 심장의 꺼내는 의식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는 아직 색칠을 하지 않고 형태만 잡아 놓았다.

 

 

멕시코시티의 역사인류학박물관의 재현 그림..마라카스가 보인다. 맨 오른쪽 끝의 인물은 초록색 케찰새 깃털로 화려하게 치장한 커다란 깃털관을 쓰고 있다.


다른 쪽에는 하얀 옷으로 우아하게 차려 입은 여인(혹은 왕의 어머니)의 시중을 받으며 역시 하얀 옷을 입은 지도자들이 자기희생의식을 치르는 장면이 보인다. 지도자들은 가시로 혀에 구멍을 뚫어 그 사이로 밧줄이나 실을 넣어 피를 흘린다. 그 아래에는 작은 아이가 앉아 어떤 여인의 품에 앉아 있다. 시중드는 사람이 가시를 들고 단 아래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림 중간 중간에 미처 색칠하지 못한 빈 공간과 인물들의 이름역시 어떤 것은 빈칸인 채로 남아 있어 그림을 채 완성하기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 그대로 방치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정의 한 틈도 보이지 않을만큼 방 가득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영화를 누리던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그림에 남겨진 그들의 의상, 신앙, 의례, 악기 그리고 전쟁. 벽화 속에 담긴 메시지는 과거의 이들이 지금의 후손들에게 남기려던 타임캡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