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

멕시코 마야 문명

미키라티나 2007. 1. 30. 15:28

 

마야 신들의 항해...작은 뼈조각에 섬세하게 새겨진 그림   

 

   고대아메리카문명의 수수께끼


   흔히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의 고산지대나 숨 막히게 더운 정글 속 광활한 지역에 걸쳐 세련되고 아름다운 피라미드들이 암초처럼 솟아있다. 처음 이 거대한 구조물들을 발견한 사람들은 이집트나 그리스 심지어 전설의 아틀란티스 문명과 관련을 짓기도 하였다. 하지만 많은 조사와 연구 끝에 학자들은 아메리카 고대문명들이 구대륙과의 교류는 전무하며 여러 부족들이 지형이나 자연 환경 때문에 각각 고립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해온 고유의 문명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다만 왕릉으로 쓰였던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고대아메리카문명들의 신전들은 말 그대로 신들을 경배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높이 쌓아올린 제단이다. 고대아메리카문명들은 어떤 면에서는 유럽이 인도에서 도입하기 천년 전에 이미 영(0)의 개념을 수학과 천문학에 응용하여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달력과 건축에 사용할 만큼 고도로 발달되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문명의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다.


    이 문명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고대문명들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세계고대문명발생지와는 다른 척박한 땅과 열악한 주변 환경에서 문명이 탄생하고 지속되었으며, 장난감토기에서는 발견되었지만 실생활에서는 전혀 응용되지 않았던 바퀴의 원리, 농경문화이지만 짐을 운반할 수 있는 소나 말과 같은 가축이나 마차나 수레를 사용한 적이 없고, 스페인군이 들여오기 전까지는 아예 철제련에 대한 지식이 없어 날카로운 흑요석과 청동으로 만든 단순한 도구를 썼던 점, 문자가 없거나 아직까지도 완전한 해독이 되지 않은 아주 기초적이고 비능률적인 문자만이 쓰인 점 등이다.

 

 

청동기

 

 

장난감에서 볼 수 있는 둥근 바퀴

 

 

올메까 문명의 숫자


   마야는 중미고대문명들 중에서 체계적인 건축술과 예술, 정확한 천문학 등에서 높은 수준의 문명으로 고유의 숫자체계, 달력, 상형문자로 학자들의 관심을 많이 끌고 있지만 그 원류는 사실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명이 성립되는 데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풍요로운 큰 강과 비옥한 삼각주 그리고 사람이 살만한 적절한 기후 등 문명 발상의 기본적인 몇 가지 조건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에스나 유적지...유까딴 주

 

 

똘떼까 부족의 침략전 치첸 잇짜...푹 양식의 화려한 건물

 

 

치첸 잇짜의 천문대...우리나라의 첨성대 쯤 되겠다

 

 

우슈말...유깐딴 주

 

 

우슈말 전경

 

 

우슈말...푹 양식의 백미 "궁전"의 장식

 

 

낀따나 루 주의 코바 유적지...주신전에 올라 내려다 보는 광경

 

 

코바의 주 신전

 

 

푹 양식...카바 유적지의 물의 신 차악 신전

 

 

물의 신 차악의 얼굴로 뒤덮힌 카바 신전

 

 

푹 양식의 라브나...아름다운 마야 아치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 온도와 습도가 아주 높은 열대우림 깊은 곳에 도시와 신전을 세우고 고도로 발달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것이 마야문명의 특징이다. 스페인 군이 처음으로 이 원시의 밀림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눈앞에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난 버려진 도시의 폐허는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카리브의 마야 요새 뚤룸 유적지...낀따나 루 주

 

 

친쿨틱 유적지...치아빠스 주

 

 

치첸 잇짜의 성채신전의 춘분...깃털뱀 신이 하강하는 모습의 그림자.


   마야를 둘러싼 방대한 수수께끼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많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왜 그러한 웅장한 건물들을 세웠는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화려한 도시들을 정글 속에 버려두고 갑자기 사라졌는가...


   마야는 해발 1400m에서 2800m 사이에 위치한 멕시코 남부고산지대 치아빠스 주에서부터 고온다습한 저지대 정글 따바스꼬 주, 해발 300m의 카리브 연안을 끼고 있는 유까딴 반도의 건조한 석회암 저지대를 중심으로 과테말라 고지대와 저지대 열대밀림, 벨리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일부까지 걸치는 광대한 영역에 걸쳐 발달했었다. 뿐만 아니라 약 3000 여년이라는 긴 역사와 그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그들의 땅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중미 최고 최대의 문명이다.

 

 

마야의 영토와 교역로


      마야의 역사


   마야는 기원전 1000년부터 서기 100년 사이인 선고전기 형성기(perclasico formativo)에 시작되었다. 가장 오래된 마야문명의 흔적은 기원전 1600년경 치아빠스 주에 나타났다. 메소아메리카의 어머니 문명인 올메까 문명이 꽃필 무렵인 기원전 1000년경 과테말라 저지대의 뻬뗀 지방에서 초기 마야의 토기 문화가 성립되었다. 기원전 700년과 600년 사이에 기단이 있는 신전이 만들어졌고 기원전 30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신전과 종교 센터가 있는 도시가 세워졌다.

 

 

올메까 문명의 거대한 두상...비야에르모사 시의 라벤따 공원


   마야 도시의 기본 단위는 광장을 에워싸고 기단을 만들어 그 위에 신전을 세운 복합건물로 이루어져있다. 이런 작은 단위의 복합 건물 몇 개가 합쳐져 과테말라의 띠칼처럼 큰 도시를 이루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추가되었다. 띠칼은 마야문명의 태동기의 도시다. 이후 약 100년간의 침체기를 포함하여 기원전 50년에서 서기 250년 사이에는 멕시코중앙고원의 떼오띠와깐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그 영향은 마야영토에까지 미쳐 문화적으로 성숙한 시기에 들어섰다.

  

   서기 100년에서 800년 사이는 고전기(clasico)로 마야문명은 신정일치체제 하에서 과학과 예술이 발달하고 종교는 더욱 안정됨으로서 문명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이때 300년경까지를 선고전기 마야라고 한다. 떼오띠와깐의 마야 진출 거점은 띠칼 이었다. 319년부터 660년까지는 고전기 마야 전기로 떼오띠와깐의 영향은 500년경을 정점으로 점차 사라졌다.

 

 

과테말라의 띠칼 유적지

 

 

태양신의 얼굴...띠칼

 

 

띠칼의 주신전

 

 

정글속의 신전들...띠칼

 

 

마야의 아치...띠칼

 

 

밀림 속의 띠칼 유적지

 

   660년부터 987년까지는 고전기 마야 후기로 7, 8세기에 다시 절정에 이르렀다. 이때 띠칼은 무너지고 빨렝께, 보남팍, 삐에드라 네그라스, 약스칠란, 우슈말, 사일, 라브나, 끼리구아, 꼬빤 등 일련의 도시에서 마야 문명의 꽃이 활짝 피었다. 고전기 마야 후기에는 언어적 분화가 심하지 않아 문화적 동질성과 정치적 통일성을 보였으나 각 지역은 자신들의 고유관습과 제도를 유지하는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빨렝께 유적지 전경...치아빠스 주

 

 

빨렝께 비문의 신전...빠칼왕의 왕릉

 

 

빨렝께의 궁전...4층탑은 마야에서 보기드문 양식

 

 

빨렝께 비문의 신전 속으로 나 있는 계단

 

 

빨렝께 비문의 신전 속에 있는 빠칼 왕묘

 

 

빨렝께 제 19 신전 방 내부

 

 

빨렝께 해골의 신전 조각


    문명의 정점을 지난 후 서기 800년부터 1500년 사이인 후고전기(postclasico)부터 쇠퇴와 멸망이 시작되었다. 987년부터 스페인에 완전히 멸망한 1697년까지 후고전기 마야에서는 중미 전역에 퍼진 가뭄을 비롯한 자연재앙이 마야도시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불러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멕시코 중앙고원의 뚤라에서 내려온 똘떼까 부족 그리고 물의 부족이라 불리는 잇짜 족 등의 침략으로 고전기마야의 멸망을 가속화하였다.

 

   전쟁의 신에게 산 사람의 심장을 바치던 호전적인 똘떼까 부족들은 마야를 정복하였고 두 문명은 혼합되었다. 문명의 혼합은 단지 인종간의 교류뿐 만아니라 건축물과 언어,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마야와 뚤라의 혼합은 오늘날 치첸 잇짜 유적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기간동안 전쟁의 과학이 꽃피우는 대신 예술은 사라졌다.


    이처럼 대문명 마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또한 고립된 환경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외래의 여러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아 창조의 길을 찾아온 문명이다.

 

    천문학자 마야인


   마야는 고대아메리카문명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화려하고 세련된 사회를 가진 높은 수준의 문명이다. 멕시코의 여러 고대문명들 중 마야가 특히 돋보이는 것은 마치 구대륙의 그리스 문명처럼 수학을 바탕으로 한 천문학과 역법 등 고도로 발달한 과학이 있었고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뛰어난 상형문자 그리고 건축과 예술에서 훌륭한 미적 감각으로 단단한 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놀라운 솜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7, 8세기에 마야사회는 계층화되었으며 사회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신관집단이다. 당시의 지도자층은 우주의 신비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농사를 짓는데 적합한 자연 순환주기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어야만 했다. 따라서 현대 과학과도 같은 수준의 태양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상형문자로 그 지식들을 기록하였다.

 

 

마야의 신분계층...왕, 신관, 전사, 장인과 상인, 노동자들

 

   따라서 16세기 유럽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마야 인들은 잔인하고 미개한 야만 부족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났던 마야 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숫자 영(0)의 개념을 유럽이 동양에서 도입하기 약 천년 전인 6세기에 이용하여 고도의 수학원리를 풀어내었다. 오로지 눈으로만 하늘을 관측하여 천체의 회전에 대한 개념을 세웠고 분수와 소수에 대한 인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양, 달, 금성의 운행을 정확히 계산해내었다. 금성의 움직임을 세밀히 관찰하여 이를 토대로 몇 천년간 이어온 복잡한 역법의 기초로 삼았다. 그리고 1년을 소수점 이하까지 계산하여 이 세 별의 운행주기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천체력을 만들어 냄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과 거의 일치하는 놀라운 천문학을 이끌어낸 것이다.


   마야 인들은 아득히 먼 옛날인 기원전 3113년 8월 12일의 금성의 탄생을 기준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율리우스력의 개량형인 그레고리우스력을 사용하여 모든 날짜는 그리스도가 탄생한 서기 원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레고리우스력은 1년이 365.2425일 이지만 마야력은 365.242129일 이고 현대의 태양력은 365.242198일로 경탄할 만큼 정확하다. 과테말라에 있는 끼리구아 유적지에 있는 한 비석에는 약 9천만 년 전과 5억 년 전까지 소급되는 천체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과테말라 끼리구아 유적지 전경

 

 

끼리구아의 커다란 석비

 

 

끼리구아의 거대한 제단 석


   그러나 마야 인들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반복되는 주기에만 열중하였다. 그들은 세상의 질서나 자연의 이치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같은 모든 것이 바로 신들의 뜻에 의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 신들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열망이 수학과 천문학으로 발전된 것이다.


   상형문자


   도시국가 그리스처럼 신전과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한 마야는 점과 선을 이용한 숫자와 함께 대부분 고대아메리카문명들이 가지지 못했던 문자를 써서 충실한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고대아메리카문명들 중에서 가장 진보된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를 혼용한 850여종의 아름다운 그림문자를 써서 건물의 계단이나 벽 또는 커다란 비석 등에 정확한 날짜와 역사를 정성들여 새겨 넣었다.

 

   신전을 이루는 돌덩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달력이고 그 벽에 새겨진 수수께끼 같은 부호들은 마야 역사를 밝혀주는 풍부한 단서가 되어 후세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장방형의 평평한 돌로 만든 비석이나 사슴가죽 또는 아마떼라는 나무껍질 종이에 상형문자를 사용하여 역사, 천문학, 날자, 생활 등을 기록하였다. 오늘날 남아있는 단 4권의 마야 문서 덕분에 기록된 상형문자의 상당 부분이 해독되었고 마야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야의 문서...복제품이다. 4권의 원본은 모두 유럽에.

 

 

마야 문서의 한 페이지...마야의 푸른색으로 칠해짐

 

 

마야 상형 문자

 

 

마야 상형 문자


   상형문자는 신전과 석주 그리고 석비와 계단에 가득 새겨졌으며 그 대부분은 신에 대한 경외심과 왕의 치적에 대한 것이다. 석비는 보통 제단과 한 조를 이루어 세워져 있다. 달력에 새겨진 상형문자는 멕시코 중앙고원의 아스떼까 문명이나 믹스떼까 문명의 그림문자보다 훨씬 복잡하고 추상적이다. 비석에는 상형문자와 함께 마야인 특유의 높고 긴 코와 뒤로 젖혀진 이마를 한 옆 얼굴의 인물상이 새겨져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왕이거나 신관으로 복잡한 머리장식을 하고 화려한 장신구를 몸에 걸친 모습이다.

 

 

석비에 새겨진 마야 지도자의 얼굴

 

 

돌의자에 그려진 마야의 지도자들...빨렝께


   그리고 아마떼 종이 위에 기록을 하고 하나하나를 병풍처럼 이어 붙인 방대한 양의 필사본문서도 남겼다. 그러나 대문명을 담은 이 귀중한 문서들은 스페인 침략자와 카톨릭 사제들에 의해 이단으로 취급되어 거의 다 불에 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야만적인 파괴의 혼란에서도 기적처럼 살아남은 단 4 권의 고문서를 열쇠로 하여 학자들은 석비와 그릇 등에 새겨진 문자들을 해독해냄으로서 수수께끼로 묻힐 뻔했던 마야문명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작은 병풍처럼 접히는 설화 책 뽀뽈 부Popol Vuh에는 마야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1554년경에 기록된‘뽀뽈 부는 공동체의 책이란 뜻이다. 이 성스러운 마야문서는 과테말라 치치까스떼낭고 마을의 교회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1645년 교구 사제 프란시스꼬 시메네스 신부가 발견하여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이다.

 

   뽀뽈 부에는 3부에 걸쳐 대홍수 설을 비롯한 마야의 신화와 우주관, 세계관이 기록되어 있고 4부에는 끼체 족의 기원과 역사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마야성서에 따르면 마야에는 네 개의 신화적 낙원이 있는데 또나띠와깐, 또모안찬, 뜰라로깐, 오메오깐 등이다. 현재 시중에 마야인의 성서 뽀뽈 부(문학과 지성사)가 나와 있다.


   20진법과 우주관

 

   마야의 숫자는 인간의 신체 부위 즉 손가락과 발가락을 사용하여 셀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기초로 한 20 진법이다. 1부터 4까지는 점으로, 5는 막대기 하나로, 6부터 9까지는 막대기 위에 점, 그리고 10은 두 개의 막대기, 15는 세 개의 막대기로 표시하고 영(0)은 가리비조개껍질처럼 생긴 상형문자로 표시하며 또한 완료를 의미하였다. 마야 유적지에 있는 비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모양새의 일련의 숫자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0에서 20까지는 동물이나 신의 얼굴을 추상화한 숫자 상형문자도 쓰였다.

 

 

낀다나 루 주 꼬울린츠 유적지 신전 계단마다 새겨진 태양신...리오벡 양식

 

 

낀따나 루 주의 베칸 유적지 주신전...리오벡 양식

 

 

베칸 유적지의 태양신

 

 

리오벡 양식의 태양신


   따라서 한달이 20일, 한해가 360일 18개월, 20년을 한 단위로 하여 햇수를 이어가므로 마야력을 현재 우리가 쓰는 시간 개념으로 바꾸려면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360일에서 나머지 5일은 불길한 날들로 19번째 달이다.


   신화에 나타난 마야의 기원은 기원전 3113년 8월 12일이라는 기록이 있다. 마야력에 따르면 2012년 12월 22일이 세상의 종말이라고 한다. 마야가 남긴 가장 오래된 역사기록은 과테말라 뻬뗀 지방의 띠칼에서 발견된 라이덴 비석에 새겨진 서기 320년이다. 과테말라의 끼리구아 비석 E 에는 서기 773년이 기록되어 있다.


   마야의 우주는 13층의 천상과 9층의 지하세계로 나뉘며 신성한 초록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나뉘고 각각 상징 색으로 표현한다. 즉, 동쪽은 빨강, 북쪽은 하양, 서쪽은 검정, 남쪽은 노랑으로 나누어지고 있으며 비록 상징 색은 다르지만 아스떼까의 우주관과 아주 유사하다. 아스떼까 인들의 우주는 수직과 수평의 2개의 세계로 수평의 세계는 5개의 방향이 있고 수직의 세계에는 지옥과 천상이 있다. 전투로 죽은 용감한 전사, 출산 중 죽은 여인들은 천상에 간다고 믿었다. 파괴와 갱생의 반복은 마야종교의 이원론이다. 죽음의 신인 아 뿌치를 숭배한 마야 인들은 언제나 죽음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야의 우주

 

 지하세계의 신 시발바(Xibalba)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마야인


   풍부한 예술 감각과 세공기술을 가진 마야 인들은 아주 간단한 도구로 지극히 공을 들여 거대한 신전을 지었다. 그리고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는 정교한 조각들과 섬세한 보석까지 가공하여 미에 대한 세련된 기호가 담긴 많은 작품들을 남겨 놓았다. 마야 인들에게 보석은 금보다 가치가 크며 금은 장식품보다 실용적인 금속이었다고 한다.

 

   마야 인들이 신성시 했던 보석은 짙은 초록빛을 띄고 있다. 가장 귀한 보석은 짙은 초록빛의 아름다운 옥 또는 비취(Jade)다. 그리고 마야의 절대 권력층인 신관계급이나 왕족, 고관대작만이 누리던 사치품목으로는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깃털 관의 재료로 영롱한 초록으로 반짝이는 귀한 께찰(Quetzal) 새의 긴 깃털, 황금빛 재규어 가죽, 붉은 색 가운, 높은 고깔모자 등이 쓰였다. 

 

 

께찰 새 깃털로 만든 아스떼까 목테수마 왕의 깃털관...원본은 오스트리아에


    메소아메리카 문명에서 께찰이라는 단어는 신화적이고 시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고대 문명의 창조주인 께찰꼬아뜰(Quetzalcoatl, 깃털 뱀)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금빛이 도는 초록의 께찰 새 깃털은 당시 어떤 금속이나 보석보다 더 가치가 있던 귀한 것이었다. 께찰 새 깃털을 구하려고 사람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께찰 새는 위와 아래, 공기와 땅, 하늘과 지하세계를 연결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고대 그림에서 께찰 새는 종종 앵무새와 혼동되기도 하였다.

 

 

께찰 새...오늘날 과테말라의 국조다

 

 

케찰 새 깃털과 카카오...고대사회에서 화폐로 쓰일정도로 귀한 공물


   토기 역시 독특하게 만들어 졌다. 표면에 하얀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붉은 안료로 색을 입힌 후 문양이나 그림을 그린 커다란 접시, 연필꽂이처럼 생긴 원통 그릇, 세발 달린 접시 등 아름다운 채색무늬 토기를 만들었다.


   마야의 조각들을 살펴보면 인물부조나 조각상에서 특히 두드러진 곳은 얼굴이다. 인공적으로 눌러서 편편하고 길게 만든 머리통과 납작한 앞이마 위까지 뻗어 있는 구부러지고 높게 과장된 큰 코는 마야 인물상의 특징이다. 그러한 용모에 큰 깃털이 달린 머리장식과 호화로운 장신구로 성장한 인물은 모두 신분이 높은 귀족이나 신관 그리고 왕의 풍모이다.


   이들은 유아기 때 앞뒤로 판자를 대고 그 사이에 머리를 끼워 마치 경사가 급한 피라미드와 흡사한 모양으로 두개골을 변형하였다. 신분이 높은 마야 인들은 모두 앞이마는 경사지고 뒷부분은 절벽처럼 납작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눈 사이에다 작은 공을 매달아 인위적으로 사팔뜨기 눈을 만들고 보석을 박아 넣은 이로 높은 신분을 나타내었다. 조각에서 볼 수 있는 두터운 입술은 오늘날 마야 원주민의 얼굴에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 삼한시대 금관가야에서도 신분이 높은 아기가 태어나면 돌로 이마를 앞뒤로 눌러 납작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월간 조선 2006년 3월호)

 

 

빨렝께 빠칼 왕의 얼굴...과장된 코와 평평한 이마가 그의 신분을 나타낸다

 

 

마야인의 얼굴

 

 

마야인의 얼굴...오늘날도 익숙한 생김새

 

 

마야 여인...입고 있는 겉옷은 위삘로 지금도 마야여인들이 입는다

 

 

마야 귀족 여인...의상과 머리장식

 

 

얼굴 장식으로 봐서 신분이 높은 마야 여인

 

 

마야인의 얼굴

 

 

마야인의 얼굴


   마야의 길(Ruta de Maya)


   마야의 도시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 만해도 120여 개에 이르고 그 중 현재 80여 개가 복원되어 있다. 유적지들은 대체로 광장을 중심으로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신전을 올렸으며 주변에 공경기장과 주거지들이 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그 모양이 다른 신전 앞에는 으레 상형문자가 가득 새겨진 커다란 비석들과 조각상들이 한 조를 이루고 서있다.

 

 

띠칼의 공놀이장

 

 

친쿨틱에서 발굴된 공놀이 선수 모습의 원반


   오늘날 발견된 마야 도시들은 주로 40m 씩 뻗어 올라간 세이바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열대우림 속이나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가 줄지은 광활한 농장에 위치하고 있어 초록바다 속에 삐죽이 내민 회색암초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비록 지금은 퇴색하여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 녹색밀림에 들어앉은 도시의 건물들은 그와 강렬하게 대비되는 붉은 색을 주색으로 하여 초록, 검정, 파랑, 노랑 등 원색으로 칠해져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밀림 속을 걷다 보면 어두침침한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나무뿌리가 얽혀 있는 틈틈이 검은 이끼가 뒤덮여 있는 계단 사면이 급하게 기울어진 신전의 형체가 보인다.

 

 

거대한 세이바 나무와 허물어진 신전...띠칼

 

 

마야의 신성한 세이바 나무

 

 

마야의 신성한 나무 세이바...너무 높아 한 컷에 다 안들어간다.

 

 

세이바 나무 윗 부분


   마야신전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겹으로 겹쳐지어진 것이 많으며 꼭대기에 화려하게 장식된 지붕이 있어 매우 높다. 하지만 남미대륙의 대 제국 잉까에서 볼 수 있었던 제대로 된 도로망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넓은 영역에 걸쳐 문명을 이어갔을까 하는 것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고전기의 대표적인 유적지는 마야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과테말라의 띠칼과 거대한 석주들의 끼리구아, 온두라스의 꼬빤 그리고 고대아메리카의 유일한 왕릉이자 신전인 멕시코의 빨렝께, 석비들로 유명한 약스칠란, 생생한 묘사로 그려진 벽화가 발견된 보남팍 등이 있다. 특히 띠칼, 꼬빤, 빨렝께, 약스칠란 등은 화려한 조각과 역사를 기록한 아름다운 상형문자가 가득한 비석들로 잘 알려져 있다. 보남팍의 벽화는 평화로운 민족 그리고 유토피아로서의 마야에 대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만큼 처참한 전쟁을 묘사한 것으로 첫 발견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보남팍 유적지...치아빠스 주

 

 

보남팍 유적지의 벽화의 방

 

 

보남팍 유적지의 벽화 원본...퇴색이 많이 되어 있다

 

 

보남팍 벽화...재현그림

 

 

보남팍 벽화...전쟁

 

 

보남팍 벽화...포로

 

 

보남팍 벽화...귀족들

 

 

보남팍 벽화...지도자들

 

 

보남팍 벽화...악사들


‘후고전기의 유적지로는 세련된 피라미드로 잘 알려진 치첸 잇짜, 우슈말, 마야빤 등이 있다. 이중 마야 최초의 성채도시로 마야인의 모범이라는 뜻의 마야빤은 서기 1263년에서 1283년 사이에 잇짜 족에 의해 건설되어 유까딴 반도를 이끌었으나 1441년에서 1461년 사이 반란으로 파괴되어 마야의 마지막 도시가 되었다.


   16세기 초 스페인 군이 침략했을 때 마야는 그보다 수백 년 전에 이미 문명의 절정기를 이루었으며 당시는 쇠퇴기에 접어들어 내리막길로 가고 있었다. 화려했던 도시들은 말 그대로 버려져 원시정글에 뒤덮여 훗날 밀림을 방문한 탐험가들 앞에 환영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문명을 이루었던 마야의 후손들은 오늘날 3백만 명을 헤아리는 인구로 남아 있어 결코 사라진 민족은 아니다. 마야족은 동일한 원 마야 어원에서 갈라진 몇 개의 언어 그룹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유까딴 저지대의 유까떼까 부족이 있고 1773년까지 그들의 문명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중부지역의 춀란 족 그리고 벨리즈와 과테말라의 끼체(나무가 많은 곳) 족이 있다. 현재 끼체와 칵치껠을 비롯하여 총 28개의 방언이 남아 있다.

 

 

유까딴 마야인들의 초가집...나(Na) 라고 한다

 

 

오늘날 유까딴 마야 사람들...저지대 마야사람들의 침대인 해먹

 

 

오늘날 고산지대 마야 부족...과테말라의 츄추마딴 지방


   오늘날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그리고 엘살바도르는 마야의 세계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차원에서 마야의 길(Ruta de Maya)을 공동 관리하고 있다. 마야의 길을 밟는 것은 단지 남아 있는 고대문명의 자취들에 감탄하는 차원을 넘어 독특한 문화를 가진 문명의 땅과 풍요롭고 다양한 자연생태계를 방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과테말라 띠칼 유적지 제 4신전에서 본 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