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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대선을 앞두고 터진 미성년자 성추행 스캔들과 여기자

미키라티나 2006. 3. 6. 10:44

한국에서는 지난달 초등학생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사건과 최근 국내에서 한 야당의원의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면 올해 7월 대선을 앞둔 멕시코는 한 여기자의 미성년자 성추행 스캔들 폭로로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지난 2월 14일 뉴스를 타고 전국에 방송된 도청 통화 내용이 그 발단이다. 멕시코시에서 동쪽으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천사들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뿌에블라 시가 있다. 뉴비틀 자동차를 생산하는 폭스바겐 공장을 비롯하여 의류와 식품 등의 공장지대가 들어선 대단위 산업도시다. 도청내용은 이 뿌에블라 주지사인 마리오 마린과 뿌에블라 10대 기업 중 8위를 마크하는 의류 기업가인 카멜 나시프 사이에 오고간 대화다.

 

  

     권력남용으로 2007년 대선의 폭풍이 된 뿌에블라 주지사 마리오 마린. 그는 TV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앵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받고 8번이나 말을 바꾸는 거짓말로 전국방송되는 결과 초래.

 

 

‘안녕하신가. 나의 소중한 주지사님(mi gober precioso)’ 이라는 인사로 시작되어 ‘주지사가 이 모든 상황극의 주인공이자 영웅이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을 구해준 감사의 표시로 ‘아주 아름다운 꼬냑 두병(bellisimo dos botella de con~ac )’을 보내고 싶다는 말에 ‘집으로 보내. 뿌에블라의 집으로. 크리스마스에 마실거니까.’ 라고 응수한 두 사람은 대 기업가와 공무원 신분에 맞지 않게 은어와 비속어를 섞어가며 듣기 민망한 대화를 한 것이다.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에 정관계에 깊이 유착된 것으로 보여 폭풍의 핵이 될 기업가 카멜 나시프.

 

 

이 사건은 끈질긴 집념을 가진 여기자의 책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일간지 프리랜서 기자였던 리디아 까쵸는 멕시코 최대 휴양지인 깐꾼에서 2003년부터 한 사건을 추적했다. 멕시코 사회에서 상류사회에 속하는 레바논계인 수까르 꾸리가 전 세계적 망을 가진 미성년자 섹스관광사업과 돈세탁을 하고 있음을 조사한 것이다. 그녀는 2년 동안 이들을 추적하여 2005년 7월 ‘에덴의 악마’라는 책으로 폭로하였다. 같은 시기 수까르 꾸리는 마약 산업에 연류 되어 미국에서 200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2년간 파헤친 추악한 스캔들을 책으로 낸 집념의 여기자 리디아 까쵸.

 

 

그 책에서 같은 레바논 계로 수까르 꾸리와 잘 알고 있던 카멜이 사실상 수까르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카멜 또한 미성년자 성추행에 관련이 있음이 폭로되자 카멜은 마린주지사에게 리디아 여기자를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주지사는 리디아를 명예훼손죄로 2개월간 감옥에 가두었다.

 

     미성년자 섹스관광 사업과 마약, 돈세탁의 주인공 수까르 꾸리. 

 

 

도청된 꼬냑 이야기는 바로 이 시점에 나온 것이다.

 

도청내용이 방송을 타고 스캔들로 이어지자 주지사는 당황한 나머지 어이없는 변명으로 일관하였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2개의 멕시코 최대 TV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하였는데 그 변명이 가관이었다. 처음에는 도청은 불법이다 하더니 그 목소리는 자기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흉내를 냈다라고 하다가 결국에는 자기 목소리는 맞는데 다른 전화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라며 진땀을 빼면서 횡설수설 모습이 그대로 생방송으로 나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주지사가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게 아닌가 하며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멕시코는 올 7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재 5명의 후보들이 맹렬한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주지사의 당인 PRI(제도 혁명당) 당은 72년간 거의 일당 독재를 하다시피하며 멕시코를 이끌어 오다 현 대통령인 PAN(국민 행동당) 당의 폭스에 참패하며 거대 야당을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 정치를 하다보니 내외부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이미지의 거대 공룡당인 PRI는 현재 대통령 후보 중 가장 지지도가 높은 중도 좌파인 PRD(민주 혁명당)과 여당인 PAN 당 다음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악재가 터져 이를 수습하느라 머리가 꽤나 아플 것이다.

 

지난 27일 일요일에는 수만 명의 뿌에블라 시민들이 주지사 퇴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 도청사건이 터진 후 모친상을 당한 주지사에게 다음주부터 도청내용의 권력 남용과 꼬냑 2병 외에 실질적인 뇌물 거래가 있었는지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 질 것이고 곧 주지사 자리를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카멜과 동업으로 뿌에블라 시에 여러 개의 불법성인주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혐의가 포착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원주민 출신의 변호사였던 마린주지사는 곧잘 ‘위대한 멕시코의 링컨’으로 추앙받는 베니또 후아레스 대통령과 비교되었던 인물이다. 베니또 후아레스 대통령은 지금도 가난한 와하까 주의 비참한 원주민 출신 변호사로 300여 년간 멕시코를 지배한 외세를 물리치고 멕시코의 기틀을 마련한 청렴한 대통령으로 국민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그는 갈색피부를 가진 유일한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다. 마리오 마린은 2005년 1월에 주지사에 취임한 후 2012년 대선 자리까지 넘보는 야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카멜이라는 기업가다. 그는 알게 모르게 이미 정관계 구석구석에 발을 뻗친 마당발이다. 그는 미성년자 성추행이라는 추악한 본모습과 다르게 유능한 기업인으로서 시민단체에 기부도 많이 했고 그중에 리디아 여기자가 소속된 시민단체에도 기부를 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전국에 여러 채의 의류공장을 지어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성실한 기업가로서 치아빠스 주의 한 공장 개업식에는 폭스 대통령도 참석해 그에게 악수와 격려를 하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대선후보 인기도 1위인 PRD의 대선 후보 로페스 오브라도르도 그와 연계되었다고 한다.

 

이런 추악한 스캔들을 폭로한 리디아 여기자는 여성단체와 언론의 지지를 받으며 방송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고 약 2만원 정도 하는 그녀의 책은 지금 전국 서점에 진열되어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고 있다.

 

     서점에 진열된 '에덴의 악마'. 베스트셀러인 소설 해리포터와 나란히 쌓여있다.

 

현재 멕시코에서는 ‘나의 소중한 000’ 이라는 말과 ‘아름다운 꼬냑’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고 발 빠르게 주지사의 얼굴과 꼬냑 두병이 등장하는 오락 게임도 등장하였다. 대선을 앞두고 터진 스캔들이라 대선 폭풍의 핵이 될지는 계속 지켜봐야 알겠지만 반드시 어부지리로 덕을 보는 편이 있을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보름이 지났지만 날이 갈수록 속속 드러나는 기업가와 정부공무원, 정치가 사이의 추악한 관계에 멕시코가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뒷면에 사건의 본질은 미성년자 성추행이다. 그리고 이를 2년간 추적한 한 여기자의 집념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저항할 힘도 없는 어린여자아이의 인권 농락과 공권력을 동원한 여기자에 대한 협박과 투옥. 물론 사건 자체는 전혀 다르지만 그 저변에 자리한 사고방식은 한국이나 멕시코나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해야 할 큰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