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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멕시코 투우장의 환갑잔치

미키라티나 2006. 2. 17. 07:53

    투우하면 스페인이 얼른 떠오르지만 멕시코시티에 세계에서 가장 큰 투우장이 있다. 쁠라사 데 메히꼬Plaza de Mexico라 불리는 투우장은 한번에 약 5만 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최대 규모다. 멕시코시티를 들어오는 비행기는 반드시 투우장 위에서 방향을 틀어 착륙장으로 향한다. 창 아래 내려다보이는 투우장은 이웃한 크루스아술 축구장과 함께 두 개의 거대한 국그릇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설날이었던 1월 29일에 펼쳐진 투우 중 빠하리또pajarito(새를 귀엽게 부르는 멕시코 식 표현)라 불리는 504kg의 소가 뛰어나오며 날아 2m 높이의 경기장 담장을 넘어 관중석으로 돌진하는 사태가 벌여져 토픽이 되었다. 이름그대로 빠하리또는 개장 60년 만에 최초로 날아오른 소가 되어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지난주 2월 5일 일요일, 개장 60주년을 맞아 잔치가 벌어졌다. 환갑날인 만큼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멕시코와 스페인 투우사들이 각각 2명씩 출전하여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사실 2월 5일은 ‘헌법의 날’로 공휴일이다. 3일간의 황금연휴로 인해 멕시코 대부분의 해안휴양지는 휴가객들로 붐볐던 터. 하지만 투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연휴도 반납하고 최고의 투우를 보기위해 투우장에 모였다.

 

소가 피를 흘리며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엄청 부담되어 투우를 좋아하지 않지만 개장 60주년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투우장을 찾았다. 이번이 4번째다. 투우는 4시지만 12시 30분 정도에 투우장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입구 앞은 혼잡했다. 매표소는 이미 일찌감치 입장권은 매진되었다는 푯말을 붙여 놨다.

 

입장료는 좌석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경기장을 면하고 있어 투우사의 기합소리와 흥분한 소의 거친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첫 번째 좌석들 중 그늘 자리가 가장 비싸 가격은 575 뻬소(약 6만원)이고,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고 햇볕이 드는 경기장 가장 꼭대기는 50 뻬소(약 5천원)로 11배의 가격차이가 난다. 하지만 오늘은 평상시에 200뻬소(2만원) 정도의 좌석이 암표상들 사이에 1000 뻬소(10만원)를 넘나들고 있었다.

 

 표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투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켓에는 ‘고문은 그만!’이라는 글귀와 피 흘리는 소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맞는 말이다. 지난주에 죽은 빠하리또의 이름이 합창으로 울려 펴진다. 그들의 눈에도 투우는 야만적인 것으로 보이나보다. 멕시코 사람이라도 모두 투우에 열광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후 2시. 입장이 시작되었다. 경비원들이 소지품을 간단히 조사한다. 이는 흥분한 관객들이 이물질을 던지지 않도록 술병은 물론 음식과 물통 등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 컵에 따른 맥주와 간단한 간식을 판다.

 

입구에서는 예쁜 도우미들이 하얀 손수건을 나눠주고 있다. 하얀 손수건은 투우사가 멋진 경기를 펼치고 좋은 점수를 받으면 흔들라고 주는 것이다. 투우장은 바닥이 납작한 큰 대접형상이다. 지상에서 25m 아래 땅을 파서 단단한 모래바닥의 원형 경기장을 만들고 경기장을 중심으로 빙 둘러 45m 높이의 관람 스탠드를 설치하였다.

 

경기장에는 60주년을 축하하는 화려한 꽃 그림이 새겨져 있다. 경기장을 빙 둘러싸고 있는 느슨한 경사의 관중석에 사람들로 빼곡히 들어찬 오후 4시. 투우는 시작되었다. 네 명의 마따도르matador(투우사)를 앞세우고 등장한 그룹들이 경기장을 한바퀴 돌며 인사를 하였다. 필자가 투우장 찾은 날 중에서 오늘이 가장 많은 관객들이 들어왔다. 빈 좌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찬 경기장은 2시간을 기대 속에 기다리던 관객들의 함성에 떠나갈 듯 하다.

 

이제 경기를 펼칠 4명의 투우사를 소개한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늘씬한 투우사들이 검은 모자를 들고 멋지게 인사를 한다. 이날의 첫 투우사는 멕시코 출신이다. 도우미가 소의 이름과 무게를 적은 피켓을 들어 보인다.

 

갇혀있던 육중한 소가 등에 꽃을 꼽고 뛰어나오니 능숙한 투우사는 까뽀떼capote(분홍색 망토)로 소를 이리저리 놀린다. 원래는 네 명의 꽈드리야스cuadrillas(조수들)가 나와서 소를 흥분시키지만 오늘의 주인공들이 누군가. 최고라고 하는 투우사들이 아닌가.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소가 투우사의 몸을 스쳐갈 때마다 올레!ole! 하고 장단을 맞춘다. 그 소리가 우르르 울리는 천둥소리 같다.

 

이어 겁먹고 날뛰지 않도록 눈을 가린 말을 타고 긴 창을 든 삐까도르picador(창으로 찌르는 사람)가 나와서 소의 등을 찔러 상처를 낸다. 그러면 소가 피를 많이 흘리게 된다. 이때 너무 오래 소를 찌르면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욕설과 야유를 보낸다.

 

그러고 나면 세 명의 반델리띠예로bandeltillero들이 나와 한번에 두개씩 6개의 작은 창을 찌른다. 능숙한 투우사는 이일도 자신이 한다. 이날 출전한 반데리떼예로들은 투우사의 명성에 걸맞게 모두 프로급이다. 빗맞아 떨어지는 실수도 없다.

 

이때쯤 되면 흥분한 소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기진맥진하게 된다. 검은 몸은 흘러내린 피로 물들고 혀를 쑥 빼물고 침을 흘리는 소를 보기가 애처롭다. 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투우사의 뛰어난 쇼맨십과 기량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검과 무엘따muleta(붉은 망토)를 휘두르며 등장하여 소를 가지고 논다.

 

붉은 망토를 흔들어 소가 망토를 치고 지나가게 하는데 이때 소가 투우사의 몸에 가장 가까이 지나게 하고 이때 투우사는 발을 떼지 않아야 실력이 좋은 것이다. 투우사의 우아하면서도 힘찬 몸동작은 마치 발레를 보는 듯하다. 이럴 때마다 관객들은 올레! 를 외치며 투우사에게 찬사를 보낸다.

 

옆에 앉은 중년 여성은 “이건 예술이야. 환상적인 예술” 하며 투우사를 향해 손을 흔들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른다. 이에 질세라 말쑥한 신사들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휘파람을 불어댄다. 육중한 소를 상대로 멋진 경기를 펼칠 때마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투우 경기에 풀어버린다.

 

투우사는 이렇게 몇 차례 하고난 후 긴 칼을 가지고 소를 찌른다. 진짜 훌륭한 투우사의 실력은 이것에서 판가름 난다. 정확하게 소목에서 심장을 향해 한번에 찔러 긴 칼이 쑥 들어가고 소가 주저앉아 바로 죽게 만들어야 한다. 고문과도 같은 놀이에 몸부림치던 소는 한순간에 뻗는다. 멕시코 투우는 소가 죽어야 끝이 난다.

 

멋지게 경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환호를 한다. 투우장은 하얀 물결 파도를 이룬다. 5만 명의 관중들과 투우를 보니 마치 2000년 전 로마의 콜로세움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심판의 결정을 기다리며 더 힘차게 투우사의 이름을 외친다. 관람석 중앙 발코니에 자리한 심판석에서 하얀 손수건이 하나 펼쳐진다. 이는 소 귀 하나의 판정을 받았음을 위미한다.

 

심판석에서 손수건 세장이 내려지는 날은 그야말로 최고의 투우를 본 날이다. 이는 귀 두개와 꼬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투우사에게는 관객석의 하얀 손수건 물결과 심판석의 소 귀 두개, 꼬리까지 주어지는 것이다.

 

단 한번에 소의 숨통을 끊는 솜씨 좋은 투우사에게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며 꽃, 모자, 옷가지 심지어 핸드백 등을 던져 투우사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소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도 숨통을 끊지 못하는 형편없는 투우사에게는 야유와 함께 깔고 앉았던 방석을 던진다.

 

오늘의 결과는 멕시코의 확실한 우위로 끝났다. 멕시코 투우사 둘은 각각의 경기에서 소 귀 하나씩을 받아 각 자 두개의 소귀를 받았으나 종주국인 스페인 투우사들은 귀는커녕 제대로 소의 숨통을 끊지 못해 많은 야유를 받았다.

 

스타 중의 스타인 스페인 투우사 폰세는 명성에 걸 맞는 경기를 보여주지 못해 그를 보러온 관객들을 실망시켰다. 보다 못한 심판은 스페인 투우사들에게 각각 한 마리의 소들을 주기로 결정했다. 즉 한번씩 더 경기를 치르도록 한 것이다. 이는 아주 특별한 배려다. 투우사에게도 그리고 그를 보러온 관객들에게도.

 

비록 소의 숨통을 제대로 끊지는 못했지만 스페인 투우사들이나 멕시코 투우사들 모두 화려한 투우 동작으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어 휴가까지 반납하고 투우장에 온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경기는 밤 9시가 넘어 끝이 났다.

 

침과 많은 피를 흘리며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불쌍한 소를 보고나면 당분간은 소고기를 먹고픈 생각이 싹 달아난다. 물론 투우는 인간과 거대한 몸집의 소의 대결로 투우사의 담력을 평가하는 경기지만 농락(?)을 당하다 죽어가는 소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시골 장터에서 벌어지는 소싸움은 머리로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아 소박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