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전통 이색요리대회. 개미알부터 다람쥐까지.

미키라티나 2006. 4. 11. 15:28


지난 4월 초. 멕시코시티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에 지역전통 요리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26회를 맞는 이 요리대회는 메스끼딸 계곡에 깃들어 사는 오또미otomi 원주민들이 조상 때부터 전해오는 전통요리들을 선보이는 것이다.


요리재료들은 주변계곡에서 나는 동식물들로 예를 들면, 건조한 반사막 기후대의 이 지역에 지천으로 널린 선인장과 선인장 꽃들, 들풀, 개미 알, 애벌레, 곤충, 다람쥐, 야생토끼, 도마뱀, 뱀 등 경작이나 인공적으로 키운 것들이 아니라 고대부터 요리해서 먹던 것들이다. 

 

 

             반사막 지대인 메스끼딸 계곡엔느 온통 선인장 뿐이다

          

멕시코는 스페인침략 후 유럽에서 소, 돼지, 양, 말 등의 가축들이 들어오면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고대 멕시코사람들은 멕시코가 원산지인 칠면조나 털 없는 개인 이츠뀐뜰리Itzcuintli를 먹었다. 그 외에 부족한 단백질은 야생의 사슴, 뱀, 이구아나, 아르마디요, 메뚜기, 곤충 알, 애벌레 등을 섭취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들판에서 야생으로 자라던 곤충들과 야생동물들은 고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먹거리였다.


고기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시골에 사는 원주민들은 철따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야생동식물들을 먹고 산다. 지금은 이색요리가 되었지만 스페인 침략 500년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문명이 급속하게 파고들면서 이미 많은 곳에서는 전통요리를 잃어버렸다.


메스끼딸에 사는 오또미 사람들은 스페인식민지의 영향을 받은 여러 가지 요리법에도 불구하고 고대 조상들의 요리 정체성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사람들은 그들의 전통을 보존하기위해 해마다 전통요리대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사방이 온통 각종 선인장으로 뒤덮인 지극히 멕시코다운 풍경 속에 자리한 작은 마을.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주변을 다 합쳐야 겨우 만 명에 이르는 이 조그마한 읍내는 마을잔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작지만 오래된 성당과 공원이 자리한 마을중앙은 이미 장이 섰고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든다. 워낙 오래된 요리대회라 그런지 소문을 듣고 이색요리를 맛보기 위해 찾아 온 관광객들과 주변 시골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잔치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가건물 강당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올해 처음으로 1100가지의 요리가 대회에 등장했다는 사회자의 멘트가 귀를 파고들었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던 원주민아낙들은 할머니부터 젊은 새댁까지 눈어림으로도 약 200 여명 정도가 자신들이 최대한 솜씨를 발휘한 요리들을 앞에 놓고 앉아있다. 심판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요리를 하나씩 먹어보며 재료와 맛을 기입해 놓는다.

 

 

              정성스레 준비한 요리를 앞에 두고 심판을 기다리는 참가자들

    

이 마을 그레고리오 가스파르 읍장님 말씀을 들어보자.


“이곳은 반사막 지대라 고대부터 하나의 생존방법으로 이 주변에 사는 동식물을 이용한 요리법이 발달했지요. 예를 들면, 지금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 선인장 꽃인 가람부요garambullo, 야자나무 선인장 꽃인 플로르 데 라 빨마flor de la palma, 마게이 선인장 꽃인 골룸보gualumbo, 손바닥 선인장인 노빨과 그 열매인 쇼꼬노스뜰레xoconostle, 나물로 먹는 알팔파alfalfa 와 껠리떼quelite, 호박과 호박꽃, 고추, 비스나가biznaga, 알로에 등 식물이 있고요,


작은 들쥐인 소리요zorrillo 와 뜰라꽈체tlacuache, 사까윌zacahuil, 다람쥐인 아르디야ardiila, 야생토끼인 꼬네호 데 깜뽀conejo de campo 와 그보다 큰 아생토끼 리에브레liebre, 아르마디요armadillo, 도마뱀인 신꼬요떼xincoyote, 뱀 그리고 선인장 애벌레인 구사노 데 마게이, 치니뀔레chinicuile, 개미 알 에스까몰레escamole, 곤충인 샹웨xo''hue, 치차라chicharra 등이 고대인들의 식탁에 올랐던 재료들로 지금까지 이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입맛을 돋우고 있습니다.”

 

 

          일종의 들쥐인 뜰라꽈체 바비큐 요리...마게이 잎사귀에 싸서 구어졌다.              


이어서 해마다 요리대회를 여는 이유는 전통요리보존차원으로 고대 오또미 부족들이 먹던 요리재료들은 건강한 자연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꽃, 풀, 나무뿌리 등을 먹고 자라는 동물들과 자연에서 주는 선물인 식물들을 이용한 천연식품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요리들은 창조가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전통이며 특히 이 요리들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철분과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다고 강조했다.

 

출품한 요리들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이맘때 구할 수 있는 동식물들로 마게이 잎사귀(알로에 같은 종으로 커다란 선인장 잎)로 싸서 찌거나 익히는 믹시오떼mixiote, 땅을 파서 돌을 묻고 불을 지펴 뜨겁게 한 다음 마게이 잎으로 싼 요리를 집어넣고 흙을 덮어 몇 시간을 두는 바비큐인 바르바꼬아barbacoa, 만두의 일종인 빠스떼paste, 스튜, 나물 등의 메인 요리들과 후식으로 단과자인 무에가노muegano와 빨랑께따palanqueta 등 다양했다. 

 

한 쪽에서는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오또미 전통음악과 춤을 선보이고 있었다. 흥겨운 잔치마당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계속 된다. 토요일은 전통요리대회를 열고 일요일은 뿔께 맛 대회를 연다.

 

마게이 선인장 술인 뿔께는 고대부터 내려오던 고대 술로 우리나라의 막걸리처럼 시큼털털한 맛이 일품이다. 오늘날에는 맥주가 대중적인 술이지만 50년 전만해도 이 뿔께를 파는 뿔께리아(뿔께 주점)가 멕시코시티 만해도 2천 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뿔께 대회는 꿀, 딸기, 코코넛, 파인애플, 레몬, 과야바, 호두, 마메이 등 각종 과일로 맛을 낸 다양한 맛의 뿔께가 선보인다.


10년째 대회에 참가한 과달루뻬 아주머니는 바구니에 담긴 선인장 꽃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가람부요 꽃은 지금 한창 피고 있다우. 이 꽃으로 지짐이를 만들어 놓고 그 사이에 개미 알에 고추를 풀어 넣어 끓인 스튜를 만들었시유. 나는 우리 조상들의 전통요리법을 지키기 위해 매년마다 참가하고 있다우.” 에스까몰레 스튜 옆에는 가람부요 꽃과 노빨 선인장 잎사귀를 썰어 넣은 푸딩이 나란히 선보이고 있었다.

 

 

           이 요리는 도마뱀에 애벌레와 개미 알이 들어간 고추 스튜.


대회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는 동안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들은 공짜로 제공되는 1100 가지의 요리 맛을 보기위해 줄을 섰다. 간단하게 또르띠야에 요리들을 얹어 두 손 가득 들고 서서 먹었다. 다들 보기에도 좀 징그러운 요리들을 잘도 먹는다.

 

              

                철판 위에 통째로 구워지고 있는 새와 필자도 맛을 본 도마뱀.


대회장 밖에 형성된 장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빨과 함께 7시간을 바비큐 했다는 새 요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개미 알 요리는 기본이고 다람쥐 바비큐, 뜰라꽈체 믹시오떼, 볶은 샹웨스 고르디따 등은 이색요리를 맛보러 멀리서 찾아 온 미식가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명다운 문명이 들어서기 전까지 인간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던 귀중한 식량원들이 아닌가.


이곳사람들은 ‘어머니 자연이 그녀의 자식들인 우리들에게 사랑을 담아 주는 선물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뿐 아니라 요리라는 법을 통해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도 중간정도 크기의 냄비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다람쥐고기나 통째로 굽고 있는 조그마한 새 몸통과 도마뱀을 보니 좀 이상하긴 하다. 요리를 하던 마리아 아주머니는 “이 요리들은 우리들에게는 전통이자 일상적인 요리다. 이맘때 생산되는 재료들로 일년에 딱 한번 맛볼 수 있는 것들이다. 다람쥐는 들판에서 사냥을 해서 잡은 후 마게이 잎으로 싸서 바비큐 한다. 그런데 이 동물들은 선인장, 나무뿌리, 열매 등을 먹고 자라는 건강한 동물이다.” 라고 말했다.


철판 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개미 알 요리. 어떻게 요리하는지 여쭤보았다. “간단해요. 먼저 버터를 녹인 다음 박하 잎과 양파를 넣고 볶아요. 그리고 개미 알을 넣죠. 마지막으로 마늘을 넣습니다. 요리할 때 알이 터지지 않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요리가 되면 옥수수로 만든 또르띠야의 일종인 두툼한 고르디따gordita를 철판에 구워 길게 가르고 그 안에 요리를 넣어 손님들에게 건넨다. 하나에 30뻬소(3000원 정도). 결코 싼 가격이 아님에도 개미 알 고르디따는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냄비는 금방 바닥을 보인다. 그 옆 조그마한 도마뱀 구이는 한 마리에 60뻬소(6000원)로 사실 비싼 편이었다. 친절한 마리아 아주머니는 한참을 서서 구경만 하는 필자에게 먹어보라고 개미 알을 듬뿍 담아 내민다.

 

 

                   개미 알 에스까몰레. 알이 터지지 않아야 신선하다.


순간 맛있게 먹던 손님들의 눈길이 일제히 이방인에게 쏟아진다.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피할 수 없는 의무감. 개미 알을 입에 넣는 순간 톡 터지며 느끼한 버터 맛이 났다. 지켜보는 눈들을 의식해 꿀꺽했지만 속으로 우엑~. 그리고 건네지던 도마뱀 뒷다리. 이미 철판에 바싹 구워져 있었지만 발톱까지 그대로 달린 조그만 도마뱀 다리. 눈 딱 감고 입에 넣었다. 익숙한 맛이 났다. 구운 오징어나 쥐포 맛. 갑자기 구경하던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를 친다. 주변 분위기는 한층 화기 애애. 숙제를 다 한 필자는 어깨가 으쓱. 하지만 그날 하루 종일 속이 메스껍고 느글거렸다.


한 옆에서 에스까몰레 고르디따를 먹고 있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색요리를 먹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 중 호르헤라고 하는 젊은 친구의 말이 걸작이다. “개미 알은 단백질도 풍부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력에 좋아요. 해마다 3월과 4월에만 먹는 요리라 아쉽지만 뿔께와 함께 먹으면 진짜 이겁니다.” 하고 엄지를 치켜든다. 무슨 말인지 재차 물었더니 “멕시코사람들은 이런 요리 많이 먹고 아이를 많이 낳습니다. 그러니까 후손을 많이 만들고 싶으면 이곳에 와서 에스까몰레와 뿔께를 먹으면 충분합니다.” 라고 적극 추천까지 한다. 진짠가?

 

 

              샹웨라는 곤충을 맛나게 드시는 아저씨의 익살스런 표정


다른 가게에선 다람쥐 미시오떼 요리를 팔고 있었다. 이곳도 역시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요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께 다람쥐를 어디서 잡아 오는지를 여쭈었다. “들판에서요. 다람쥐 사냥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하필 그 조그마한 다람쥐가 먹을 게 뭐 있다고. 왜 다람쥐를 먹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다람쥐는 고기가 영양만점이죠. 자연에서 자란 전통요리랍니다. 우리조상들도 이 고기를 먹고 아주 건강하게 사셨죠. 우리할머니는 120세까지 사시다 돌아가셨어요. 다람쥐고기는 지금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고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다람쥐 미시오떼 요리를 앞에 펼쳐놓고 엄마, 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맛있게 먹고 있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다람쥐고기는 아주 건강하다. 이 동물들은 (소나 돼지처럼)화학 사료를 먹고 크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나는 풀이나 과일만 먹고 자란다.”고. 듣고 보니 사실 일리 있다. 우리가 시중에서 사서 요리하거나 먹는 수많은 음식재료 중 과연 화학처리가 안된 것이 얼마나 될까.


도대체 이런 재료들은 어떻게 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방인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던 친절한 읍청 직원 알란의 도움을 받아 재료를 구하는 현장을 다녀왔다.

 

 

                시골 농부의 부엌에서 나온 저녁 거리. 야생토끼


개미 알은 해마다 4월과 5월 사이에 생산된다. 이때 개미 알을 수확(?) 하게 되는 데 이곳사람들은 개미가 사는 곳을 잘 봐두었다가 알을 수확하고 다시 잘 덮어 내년에 또 다시 수확을 한다. 마치 꿀벌에게서 꿀을 따듯. 개미들은 대부분 커다란 마게이 뿌리 아래에 집을 짓고 산다.

 

개미 알을 캐내려면 그들의 알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복수를 하는 개미들의 공격을 고스란히 다 받아야 한다. 따라서 어른들이 주로 나서는데 옆에서 지켜보자니 개미들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물어뜯는다. 윽. 보기만 해도 가렵다. 개미 알을 몽땅 들어내는 게 아니라 조금은 남겨둔다. 그래야 내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개미 알을 수확할 수 있다. 이렇게 수확한 개미 알은 가격이 제법 비싼 편이다. 커다란 참치 캔 가득 담아 140뻬소(14000원). 개미 알을 찾아낸 농부는 그 자리에서 흙을 털어내더니 개미 알을 맛있게 꿀꺽.  

 

 

      높이 핀 마게이 선인장 꽃 골롬보를 따기 위해서는 줄기를 잘라야 한다.


읍청 직원 알란에게 이곳사람들은 왜 에스까몰레 같은 요리를 먹나 하고 물었다. “일단 영양가가 많다. 그리고 우리에겐 전통적인 음식이다. 다람쥐, 야생토끼 등의 동물들은 꽃이나 뿌리 등을 먹고 자란다. 따라서 화학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자연 그 자체다. 우리 마을은 이미 1400년경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런 요리들을 먹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맘때 꽃을 피우는 야자선인장 꽃...하얀 꽃을 먹는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 적응해서 생존한다. 이색요리를 맛보고 돌아오면서 어머니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대지의 선물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의 한국 땅에서 사라지고 없는 자연의 선물이 무엇인지를.